[아웃도어 구락부] 설악산 종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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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마침 좀 풀렸고 예상보다 일찍 오른 탓에 이때는 다소 기분이 상승했다. 금방 가더라. 대청봉에서 사진을 잔뜩 찍고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 저녁을 먹었다.

잠자리 대충 깔고 자려는데 그 애한테 문자가 왔다. 아, 먼저 온 건 아니고, 그새 못 참고 내가 한 통 보냈었거든. 이따가 회사 끝나고 전화하겠노라는, 성의 없고 짤막한 내용...... 이다만 여튼 연락이 왔던 탓에 나는 바보 같이 들떠버렸다.

잠깐 이 아가씨에 대해 서술코자 한다.

이 사람의 성은 '엄'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엄이라고 부르겠다.

지금 쓰는 글에 다소 비하적으로 이 년, 저 년 쓰고 있다만 실은 난 이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 밖에 없다.

엄은 내가 100점을 준 여자 중 유일하게 나를 3번 이상 만나준 사람이다. 그것도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바쁜 사람이었음에도, 내게 제법 기회를 줬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만 큰 키에 참한 얼굴의 소유자였고 지성과 인품이 말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좋아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차이기도 하고, 운 좋게 사귀기도 하고. 가끔 찾아온 행운이 이런 푸닥거리나 하는 시간를 지탱해줄 추억을 만들어주었지. 하지만...... 만약 내가 좀 더 잘했다면, 상황이 조금만 더 유리하게 돌아갔다면, 어쩌면 평생을 함께 보낼 동반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 사람은 이 여자 밖에 없었다. 원체 여자에게 쉽게 반하는 편이다만, 짤막한 만남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흔한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아닌가?

사실 잘 모른다. 여자 문제는 늘 맹점이라 섣불리 결론은 못내겠군.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그녀가 나왔다. 그녀와 나는 산장에 둘이 앉아있었다. 다소 낡았지만 고풍스런 느낌이 나는 벽난로와 잔뜩 쌓인 자작나무 그리고 편안한 흔들의자. 정감 있는 아이보리 색으로 칠해진 천장에는 흔들리는 불빛의 그림자가 보인다.

나와 그녀는 서로를 마주본 채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 꿈 속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자녀들이 참 잘 커주었고, 이제 둘이 여행이나 자주 다니자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며시 주름 잡힌 손을 꼭 움켜쥐었다. 따뜻한 느낌이 난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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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2월 10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