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구락부] 설악산 종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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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란 불편함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아직 난 불편함은 물론이고 산의 풍경도,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즐기지 못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어진 사람은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데 내 인격에는 그닥 중후한 맛이 없어서일까.

상하의를 세트로 구비한 고급 브랜드의 등산복과 값비싼 배낭, 그리고 폼 잴 때 빼고는 그닥 필요하지 않은 고글 등등을 사둔 것은, 내가 부유하고 체력적으로도 우수한 지성인의 이미지(이를테면 모험을 즐기는 유럽 귀족이나, 사업에 성공한 퇴역 장교 같은)를 선망해서이지 그만큼 등산을 자주 즐겨서가 아니다.

나는 내가 운동을 즐기지도 않고 재능도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씩은 우쭐해하곤 한다. 약해빠졌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나는 실체 없는 이미지를 쫓는 사람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며 그런 동경조차 없는 사람들보다 신체적으로 준수한 능력을 보이는 일이 점차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에 만족하며 스스로가 강해졌다는 믿음을 가지곤 했다.

실은 모든 분야가 그렇다. 나는, 본인의 삶 전반이 점차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있다는 환상 속에 20대의 절반을 보냈다. 과거의 약한 나 그리고 지금의 강한 나. 그게 내가 저질렀던 이분법적 오류다.

[나는 분명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마치 높은 산을 타는 것처럼. 그러니 발전하는 나는 응당 등산을 좋아해야 한다.]

그것이 등산에 대한 내 관점이었다.

인생에는 확실히 등산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리에 통증을 느껴가며 고생해서 목적지에 다다른다만 정작 누구도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산을 오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도 받는다만 결국 산을 오르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또 누군가는 내려가며, 동일한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일반해적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껏 취해 왔던 저 자기 최면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완전히 폐기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약한 사람일 뿐구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 짧은 순간도 버틸 수 없는.

  • 2011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