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습니까?'
남고였다. 남고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시키는 교육에 예산을 측정하는 게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궁금했다. 다시 말하지만 남고다. 당연히 녀석들의 대답은 섹스다.
하지만 내 답은 달랐다. 그 날 학교에서 아침에 소위 논다는 녀석에게 노려봤다는 이유로 싸대기를 맞았거든. 그런데 무서워서 아무 대응도 못했다. 겁이 많다. 근데 굽힐 근거가 없던 것도 아니다. 예전 내가 살던 지방의 모 도시에는 말대답을 한다는 이유로 소위 일진들이 혀를 가위로 자른 사례도 있으니까. 나도 대학에 가서 이쁘장한 여대생이랑 섹스를 해보고 싶었다. 잘린 혀로는 키스도 못하겠지.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맞서 싸우는 대신에 수첩에 조용히 적어두었다.
'혹 불치병에 걸리거나 또는 자살할 일이 생기면 저놈 뒷통수에 벽돌을 내리칠 것이외다.'
자살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 놈을 죽여야겠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게 인생이라면 곧 죽기 전 사람 하나 죽인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냐. 사린 가스 테러를 일으킨 옴진리 교를 신자들에게는 출근 중인 가장들을 죽이는 게 공동선을 이루는 길이었고,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지상 낙원을 이루기 위해 러시아 귀족들의 영애를 강간한 뒤 죽였다. 걔네들보다 내가 딱히 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실은 도덕이 무언지도 모르겠다.
재빨리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뒤졌다. 참 싫어하던 얼굴이 나왔다. 맨 뒷 면의 주소..... 프린스 아파트..... 아직 여기 사는건가. 소개팅 하나를 해도 페이스북 정도는 뒤져보는데, 사람 하나를 죽이겠다는데 수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죽는 순간까지도 뭔가에 열중하는 삶은 아름다운거야.
그 놈의 얼굴을 찾는 데에는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더 구역질이 나는군. 그런데 여자 친구가 예쁘다. 어째 힘들게 공부해서 변호사 씩이나 된 내가 만난 애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아무리봐도 구운 고등어를 닮은 얼굴인데 도대체 왜! 어째서냐! 이럼 억울하지 않은가. 역시 더더욱 살려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