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해가 지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겁다. 하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요즘 부쩍 나에게 적극적이라는 건 의식하고 있었지만, 지난번 김웅섭의 고백사건 이후로 나는 행실을 좀 더 조심하기로 했다. 굴뚝에 들어간 소년, 그리고 굴뚝에 들어가지 않은 소년. 둘 중에 굴뚝 안 들어간 소년이 먼저 세수를 한다지 않는가? 나는 일상적인 호의를 오해해 망신을 자초한 김웅섭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다.
김진의와 김웅섭의 스캔들에 대해 얘기하던 중, 박하나가 말했다.
“김웅섭은 그 여자애가 자기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란 거야.”
“뭐라고?”
“그게 아니라면 걔가 거기 왜 서 있었겠어?”
“난 김웅섭이 뭐라도 하려는 줄 알았지. 고백까진 아니더라도 밥이나 같이 먹자던가, 커피 한잔 하자는 정도는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
“넌 오덕들을 과대평가하고 있어. 내가 말했지? 걔는 절대 그럴 용기가 없다고. 아마 그 자리에 서있는 것 자체가 김웅섭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였을걸? 아마 그 문 앞에 서있으면 진의가 다가와 말을 걸어줄 거라고 믿었을 거야.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 나오는 히로인처럼 말이야.”
하나는 새된 소리로 일본 애니메이션 성우 목소리를 흉내 내며 깔깔거렸다. 나긋나긋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김웅섭을 조롱하는 하나의 목소리에는 제법 차가운 구석이 있었다. 나는 비아냥대는 하나를 보며 김웅섭이 그렇게 소심한 놈인 게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김진의의 가슴 속에 김웅섭은 어떤 추억으로 남게 될까? 혹 진의가 마흔 살이 된 뒤에도 김웅섭은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 18세의 찌질이로 남아있진 않을까?
‘엄마도 어렸을 땐 인기 많았어. 동네 찐따들이 학원 정문에서부터 줄을 섰다니까.’
마흔 살 아줌마가 된 김진의를 상상하던 나는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박규 너, 이제 걔한테는 신경 끄고 공부에 집중하는 게 어때? 좀 있으면 모의고사야. 우리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요즘 널 보면 꼭 김웅섭이랑 사귀는 거 같아. 매일 만나면 김웅섭 얘기만 하고. 너 내가 어디서 뭐하고 다니는지 관심은 있냐?”
“넌 내버려둬도 니 알아서 잘 살잖아.”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공부 가지고 훈계 듣는 건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하나랑은 작년부터 친구사이였지만,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국어과목을 빼곤 한 번도 하나를 이겨본 적이 없다. 구질구질한 변명은 그만두기로 했다. 어쩐지 더 없어 보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박하나든 김웅섭이든 내가 알게 뭐람.’
다른 사람 인생에 신경써봐야 좋을 것 없다. 입시를 앞둔 지금 당장은 내 인생 챙기기도 바쁘다.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언제나 ‘공부나 해라 박규!’ 같은 서글픈 결론만 도출되는 것이다. 어쩐지 나도 김웅섭 만큼이나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학교에는 벌써 일등에서 꼴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입시공포가 침투해있었다. 나는 그다지 미래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편은 아니었지만 귀가 얇기론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 무렵의 나는 학교에 만연한 공포와 군중심리에 휩쓸려 그 어느 때보다 공부에 매진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춰 교내 독서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애들은 새로 지은 교내도서관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그냥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했다. 말은 자율이지만 우리에겐 거부권이 없으니 사실상 강제다. 강남 8학군 학교들은 이미 학원가에 주도권을 내준지 오래라고 들었는데, 강남만큼 집값이 높지 않은 우리 동네는 아직도 학교 선생들과 학원 강사들의 기 싸움이 팽팽했다.
기 싸움이란 건 어느 한 쪽이 줄을 너무 잡아당기면 늘 사고가 난다. 학교에서 전교생에 대해 자율학습 전일참가를 의무화하자 당장 학원 강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강사들은 학부모들을 이리저리 흔들었고 학부모들은 떼로 몰려와 학교 선생들과 드잡이를 했다. 정작 자율학습 당사자인 우리들은 스포츠 게임 관전하듯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누가 이기든 하루빨리 상황이 정리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10시에 하교해서 바로 학원에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독서실에서 나는 도무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 상황이라는 것은 물론 김웅섭이었다. 김웅섭이 공부 잘하는 놈들에게만 입실이 허락되는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이 너무나 신기해서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병훈이에게 전송했다.
‘김웅섭이 왜 여기 앉아있냐?’
문자메시지를 보낸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병훈이에게 답장이 왔다.
‘말도마라. 그 자식 형평성이 어쩌구 자기의 잠재력이 어쩌구 하면서 난리를 쳤어.’
‘아니, 그렇게 우긴다고 들여보내줘?’
‘담임도 처음엔 안된다고 했지. 그랬더니 선생님 앞에서 울더라.’
‘이런 미친......’
울었다고? 천하의 김웅섭이? 양선생에게 쥐어터지면서도 눈물만큼은 보이지 않았던 겨털머리 엘비스가? 당황해서 멍 때리는 와중에 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담임이 불쌍하다고 한자리 마련해줬대. 지금 그것 때문에 애들이 열 받아서 난리도 아니야.’
병훈이의 문자를 본 나는 고개를 돌려 김웅섭을 쳐다보았다. 김웅섭은 독서실 구석 가장 후미진 자리, 에어컨 물 떨어지고 곰팡이 핀다고 다들 기피하는 자리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가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싶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슬쩍 훔쳐보았다.
<유대 자본의 세계 정복 프로젝트, 실존하는 시온의정서>
“에라이, 이 병신아!”
나도 모르게 김웅섭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김웅섭은 히틀러의 초상이 인쇄된 페이지에 코를 박았다.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김웅섭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나니(なあに)? 뭐, 뭐냐는?”
“내일 모레가 시험인데 여기서 뭐하냐? 너 여기 울어서 들어왔다며?”
김웅섭은 나에게 얻어맞은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예상과 달리 김웅섭은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이제는 나를 꽤 친한 친구로 여기는 듯 했다.
“뭐 그렇게 됐지.”
기가 찰 노릇이다. 저런 음모론 따위를 저렇게 진지한 태도로 읽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담임한테 눈물까지 흘려가며 겨우 들어온 독서실에서? 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눈물이 날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의 손에서 책을 뺏어들고 김웅섭이 읽고 있던 부분을 살펴봤다. 히틀러가 유대인의 세계 정복을 막기 위해 거사를 일으켰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 사악한 독재자라는 왜곡된 이미지로 낙인찍혔다는 내용이었다.
“이따 저녁 시간에 음료수나 한 잔 하러 갈래?”
경멸적인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김웅섭은 평소와 달리 제법 살갑게 굴었다. 게다가 그가 뭘 사겠다고 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김웅섭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할 말을 잃었다. 그날 밤 우리는 월담을 했다. 근처 커피 전문점으로 나를 끌고 간 김웅섭은 익숙한 듯 생과일 주스 두 잔을 주문했다.
“편히 마셔. 우리 집이 그래도 좀 사는 편이거든.”
야자시간에 생과일주스 사 먹는 게 좀 사는 집 애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대꾸가 귀찮았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전문점에는 온통 커플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웅섭과 단둘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니 짜증이 절로 났다. 아무리 봐도 박하나 말이 맞다. 나는 지금 이 놈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는 게 분명하다.
김웅섭은 제법 신이 나서 내게 유대자본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911테러를 위시해서 유대자본이 어떻게 국제정세를 좌우하고 있는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력은 어느 정도인지, 외환위기도 사실은 유태인들의 농간이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김웅섭은 묘하게 주변에 있는 다른 커플들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너희들은 시시껄렁한 연애질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수준 높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듯이.
김웅섭은 자신의 열변에 심취해 마치 연단에 선 혁명투사처럼 걸핏하면 테이블을 두드려댔다.
“한마디로 유대자본의 탐욕 때문에 코스피가 외국인 투자자들 손에 휘청대는 거란 말이지!”
상황이 이쯤 되니 알바생과 주변 커플들이 힐끔거리며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남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김웅섭과 달리, 나는 민망해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생과일주스를 원 샷 때린 나는 김웅섭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왔다. 김웅섭은 끌려나오면서도 흥분한 듯 빽빽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프리메이슨은 존재해!”
“닥쳐!”
나는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김웅섭의 입을 틀어막았다. 김웅섭은 내 반응이 이해가 가질 않는 다는 듯 단춧구멍만 한 두 눈을 깜빡거렸다.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김웅섭에게 내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야, 넌 공부 안 하냐? 공부 안 해?”
“공부? 지금 하고 있잖아, 그러니깐 프리메이슨이......”
“아니 프리메이슨 말고. 너 울어서 독서실 들어갔다며? 그럼 뭔가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 될 거 아니냐?”
“난 공부하려고 들어간 거야. 다만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산지식을 공부하는 중이지. 깨어있는 지성만이 익힐 수 있는 그런 지식.”
“그런 가십거리나 읽는 게 무슨 공부냐? 너 니 입으로 존나 똑똑하다며? 그럼 성적으로 증명을 해보던가. 남들은 아무도 관심 안가지고 배워봤자 하등 쓰잘데기 없는 거 읽으려고 독서실까지 들어간 거야?”
김웅섭은 그제야 내가 잔뜩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 쭈뼛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런 걸 왜 해? 입시는 이미 너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라 하고 있는데. 난 너희들이랑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공부를 해야지.”
“다른 공부를 하더라도 좀 쓸모 있는 걸 배워야지 그딴 거 외워봐야 뭐하게?”
“야, 쓸데없기는 학교공부도 똑같아.”
김웅섭이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로 내뱉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놈과 대화를 하려 했을까? ‘커서 뭐 될래?’ 소리가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썩 미래를 잘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이상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김웅섭은 동갑내기에게 매 맞고 멱살까지 잡혔음에도 뭐가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참 속도 없는 놈이다. 교내 독서실로 돌아오는 길 내내 김웅섭은 신이 나서 프리메이슨과 유대인 얘기를 했다. 도대체 유대인들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기에 이런 아시아 뚱보에게까지 괄시를 받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자리에 들 무렵, 마침 박하나에게 전화가 왔다.
“박규. 공부 잘 되냐?”
“웬 일이래?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어제도 했으면서 뭐라는 거야. 그리고 전화 좀 하면 안 되냐? 난 야식 먹고 자려고 누웠다.”
박하나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박하나는 자주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이긴 했다. 요즘 들어선 전화통화도 한다. 일주일에 두어 번 통화하던 것이 이틀 건너 한 번 꼴이 되더니 최근에는 거의 매일 밤 이불 속에 들어가 전화통을 붙들고 있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의아한 일이다. 원래 하나는 시험기간엔 답문도 잘 안한다. 그래도 잠들기 전 서로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 줄 여자가 있다는 게 좋았고, 그게 박하나라는 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었다.
“나도 누웠다.”
“뭐 먹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뭐 먹었는데?”
“라면.”
뭐가 그리 웃긴지 하나는 혼자 깔깔댔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애교 섞인 눈웃음이 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혼자 흐뭇한 상상에 빠졌다. 그런데 늘 그렇듯,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은 라면 얘기밖에 할 게 없었다.
“맛있냐?”
“졸라 맛있어. 근데 내일 얼굴 부을 거 같아.”
“넌 얼굴이 커서 괜찮아. 별로 티 안 날 거야.”
“죽을래?”
“맞다. 아까 김웅섭이 나한테 주스 사줬어. 얘 오늘 담임한테 우겨서 독서실 들어온 거 알아?”
“또 김웅섭이야? 넌 나랑 할 얘기가 김웅섭 밖에 없냐?”
하나는 살짝 기분이 상한 듯 했다. 그녀가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나는 나대로 당황해서 횡설수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 물론 네가 우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김웅섭은 이상한 사람이긴 한데 평범하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사실 그놈 때문에 되게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아.”
“야, 난 너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넌 만날 때마다 김웅섭, 김웅섭...... 김웅섭 얘기 하려고 나 만나냐? 졸라 지겨워.”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냐?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친구? 하.”
하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전에 얘기한 적 있지? 오덕후들은 용기가 없다고. 김웅섭이 음모론에 집착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강해지고 싶어 하는 오덕들의 심리일 뿐이야.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정신적인 측면에 치우쳐있다는 것뿐이지. 이런 부류의 지식형 오덕후들이 자기만족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뭐겠어?”
“아마도, 남들이 잘 모르는 걸 찾아내서 외우는 것?”
“그래. 그 편이 아는 척 하기 제일 쉽잖아?”
“오호라.”
“지적 우월감이 있는 오덕후들은 스스로 머리가 좋다거나 아는 게 많다고 착각하곤 해. 이런 타입은 상대방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지. 그래서 정상인이라면 관심 가지지 않을 것들에 집착하는 거야. 김웅섭이 총기의 종류와 제조사, 구경이나 구동 방식을 달달 외우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듣고 김웅섭의 기행을 돌이켜보니 제법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박하나의 분류대로 김웅섭 역시 ‘지식형 오덕후’의 일종이라면......
“아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버리는 거네. 학업 성적이나 지혜, 인품 같은 정상적인 척도로 승부해서는 경쟁력이 없으니까......”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도피하는 거지. 자기가 구축한 영역에서만큼은 자신이 지적으로 가장 뛰어난 존재거든. 그러나 그렇게 익힌 지식은 애초에 경쟁의 가능성 자체가 없는 지식들이잖아. 순전히 지적 허영만을 위한, 지식을 위한 지식일 뿐.”
하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부었다. 하나의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단정적인 면이 있었으나 일견 타당해보이기도 했다. 대관절 시온의정서나 프리메이슨 음모론에 관한 지식으로 경쟁이라는 게 가능하긴 할까? 경쟁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분야의 지식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만을 찾아 익히는 겁쟁이들이라. 물론 세상에는 멀쩡하게 사회생활 잘 하면서도 특정 분야에 비상한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긍정적인 사례들을 무시한 채 속단해도 되는 것일까?
김웅섭의 말도 안 되는 지적 선민의식을 보고 있자면 그가 정상적인 경쟁을 기피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대책 없이 몰두하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니 최소한 김웅섭에게 만큼은 하나의 분석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문득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오덕후들에 대해 어떻게 이리 자세하게 알고 있을까? 박하나의 견해는 전부 그녀의 독자적인 분석일까? 아니면 어디서 읽은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는 하나는 분명 오덕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웅섭에 대해 이런 분석을 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