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무엇이든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일 때는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의 근본이며 분노는 적이다.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덟 살때부터 11년 간 볼모 생활을 했다. 당시 볼모는 할복을 종용받으면 바로 할복을 해야했다. 또한 이에야스의 아버지는 이에야스의 생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어릴 때부터 배워야 했던 것은 모든 일에 참는 법이었다. 이에야스는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었지만 노부나가의 비위를 맞춘 덕분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에야스는 긴 인고의 세월 끝에 볼모 생활을 끝내고 겨우 영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케다 신겐과 정면 승부하는 길을 택했지만 지휘관로서 경험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병력의 양과 질 모두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참패하고 만다. 이에야스는 간발의 차이로 추격에서 벗어났으나 패주 중 겁에 질려 말 위에서 그만 똥을 지리고 말았다. 겨우 생환한 그는 화공을 불러 똥을 지린 그 상태 그대로 자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후 그는 다른 세력과 적대 관계를 맺는 일을 늘 꺼렸다. 이를테면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그는 자신이 근소한 우위에 있다는 걸 알았으나 오히려 몸을 굽혀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었다. 이후 아주 오랜 기간 이에야스는 조심스레 처신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죽인 후, 히데요시 가문을 멸문시킨다. 그리고 그는 히데요시가 못 이루었던 미완의 통일을 이루어냈다. 도쿠가와 家의 지배력은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소멸될 때까지 260여년을 지속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만큼 뛰어난 군사적 재능이 없었다. 그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만큼 개방적 사고를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다케다 신겐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무리한 전쟁을 벌였던 것과 다르게, 그는 자신을 내쳤던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처신했고, 노부나가나 히데요시가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을 통일하고자 조급해했던 것과 달리, 그는 환갑이 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한번은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큰 아들이 모반할 것을 의심하여 할복을 명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야스는 그것마저 참고 지켜보았다. 특히 이에야스는 자신의 큰 아들을 죽기 전까지도 언급할 만큼 아꼈지만 다른 태도나 행동을 취해봤자 더 상황이 악화되지 밖에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그런 극악한 순간을 참아낸 것이다.
히데요시와의 일전을 피하고 히데요시를 넘어서지 않는 노련함을 보이다가 히데요시 사후에 상황을 판단한 후, 마침내 자신의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그래서 그는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탁월한 행정가이고 백성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법을 알았으나 동시에 재물에 대한 욕망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에 못지 않아,
말년에는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채광 기술로 상상하기 힘든 양의 부를 축적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평전,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