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大二病)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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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말고 대2병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가망이 없다고 혀를 끌끌차며 나는 다르게 살겠노라고 말하던 녀석이 있었죠. 친구로서 제가 해주어야 했던 말은, "정신 차려 이 친구야."였을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이 친구와 의기투합해 허구한 날 술로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아마 저와 제 친구가 자주 가던 술집의 사장은 꽤나 얼척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군대도 안 다녀온 어린 남자 둘이서 설익은 철학을 논하며 소리 높여 언쟁하다가 방법론 제시 하나 없이 뜬금 없이 재벌이나 문화 권력이 되겠다고 으쌰으쌰 거렸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저나 그 친구나, 아침마다 지각할까봐 넥타이 붙잡고 불이 나케 뛰어 회사에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자신이 젊은 날 썼던 글이 부끄럽다고 그러더군요. 자존심 강한 친구의 자조에서 느껴지는 그 참담함이라니. 그 친구보다 제가, 그 친구 때문이 아니라 저 자신 때문에 더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꿈을 꾸어볼 수 있는 나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잠깐 웃자고 저 만화를 올리긴 했지만 이 친구는 아주 멋있는 놈입니다.

보통 대학생들은 태반 이상이 자기 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회에서 굴러본 뒤에야, 뒤늦게 자기 적성을 찾으며 방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보통은 그마저도 포기합니다. 냉정한 현실 앞에 근거 없는 희망을 고이 접고 쌓아온 시간과 미래에 대한 참혹한 견적서를 발부하죠. 누군가 나이가 먹을수록 술자리가 재미 없어 지는 이유를, 희망과 꿈을 안주로 삼기에 상상력에 제한을 걸어버릴 명백한 근거가 너무나도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이 녀석은 달랐습니다. 그 생각에는 다소 정제되지 않은 구석도 있었을지 모릅니다만 적어도 남이 정해준 기준을 따라가며 살지는 않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아는 것,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하게 직면하는 것만큼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해도 다 똑같이 사는 게 인생입니다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얻는 데 자기 시간을 전부 쓰는 사람은 크건 작건 무엇이라도 이룹니다. 이루어 보니 별 거 없다는 말도 이룬 뒤에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차피 내려올 산이라고 해도 올라가 본 사람은 느낀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대2병(大二病)의 흔적...... 그때 그린 큰 그림에 비하면 여전히 이룬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만, 자신이 공언했던대로, 이 친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지독하게 모은 월급으로 비록 작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상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탈락 없이 여전히 젊은 날의 그 꿈 위에 서 있군요. 저와는 매우 다른 캐릭터를 가진 사람입니다만, 존경하며 또한 응원합니다.

한 젊은이에 대한 응원으로써, 십 년도 훨씬 전 이 친구가 썼던 결심을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미래의 제 자녀가 이런 대2병에 걸린다면 저는 퍽 기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을까? 글쎄올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20대는 40살이 되기 전에 10억 모아 은퇴하겠다는 자들이다. 40살이 되기 전에 모은 10억으로 그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걸까? 10억을 모은 이후에 그들은 무엇을 할 셈인가.

결국 그들은 나고 자라 죽는 순간까지 소비의 주체로만 살겠다는 것 아닌가. 남이 이룬 세계에서 남이 만든 물건만 줄기차게 쓰다 사라질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른들이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은퇴하겠다는 자들이 배우는 거라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 뿐이다. 나고 자라서 배운 거라곤 알량한 학부지식과 토익, 자격증 뿐인데 뭘 기대하겠는가. 그들에게는 마흔 이후의 미래를 설계할 상상력이 부족하다.

더 한심한 건, 이 사회가 우리 20대들에게 기대하는 게 바로 그런거라는 점이다. 소비, 소비, 소비. 원활한 소비생활을 꿈꾸며 오늘도 우리는 각종 교육상품을 소비한다.

20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극장에서 꼴랑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정신적 포만감을 느낀다. 누군가 만들어 제시한 트렌드를 찾아 쫓기 바쁘다. 지난 세대가 이루어 놓은 예술을 감상하며 열광한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다.
당당한 주류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생산의 주체가 되고 싶다.
지배력을 가지고 싶다.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물질로써 그 세계에 방벽을 쌓고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다.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가문'을 이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