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장난감 같은 불로 날 죽일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하겐의 상처투성이 얼굴은 검은 연기에 붉게 익어 더욱 흉측하게 보였다. 그는 차갑게 크림힐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불을 붙이다 잡힌 크림힐트의 시동이 붙들려 있었다. 그는 크림힐트의 눈 앞에서 시동의 분홍빛 두 손을 잘라 그것을 크림힐트에게 던졌다.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저 자를 죽여라!"
크림힐트는 악에 받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거기 계시오. 내가 곧 당신을 전 남편 곁으로 보내드리겠소."
하겐은 춤을 추듯 칼을 흔들며 크림힐트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왕비를 지키려던 훈족 무리와 불길에서 살아남은 부르군트인들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은 어제까지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무용담을 자랑하던 사이로 엉겹결에 싸움에 끼어들었으나 이내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자 증오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에 시체와 피가 가득했다.
하겐은 지옥에서 온 악마마냥 훈족에서 가장 용맹스럽다는 전사들을 베어 넘겼다. 그와 칼을 맞댄 이들은 단 한 명 예외 없이 모두 머리가 쪼개지고 사지가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