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軍鷄)의 나루시마 료는 숨이 끊기기 전 질문을 받는다.
무엇이 당신의 시작이냐?
자신을 억압하던 부모를 죽였던 그 순간인냐? 잔뜩 겁을 먹어 교도소에 들어가던 그 순간이냐? 아니면 살기 위해 가라데를 배운 그 순간이냐? 그렇게 베베 꼬여 살았던 이유는 도데체 뭐냐 이거다.
나루시마 료마냥 밥 먹듯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범죄자도 아니고 소시민으로 억눌려 살다가 고작 이제 사람 하나 죽이러 가겠다는 시시한 인생의 근원을 찾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본인의 인생이니 굳이 한 번 과거를 다시 돌아보자면 '내 시작'은 여드름 가득하던 냄새 나던 남고생 시절 교복 바지를 벗고 성경책에 자위행위를 했던 그 순간인 것 같다.
난 모태신앙이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 어머니 밑에서 하루에 성경책을 한 시간씩 읽고 일주일에 세 번 교회를 다니며 자랐다. 매순간 하나님이 내 행동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전부 상벌을 내린다고 믿었다. 그 당시 내 세계관에서는, 그런 불경한 자위행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음경을 절단해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는 성병을 내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데스매탈 밴드들은 쇼맨십 측면에서 먹고 살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만 요컨대 내게 그 행위는 전쟁터에 나간 신병이 사람에게 처음 방아쇠를 쏜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외부적인 일에 저항하지 못 했다. 어머니는 인간사의 모든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찾는 버릇을 가르쳤다. 어느 날 버스가 늦어 학교에 지각을 한다면 어제 밤에 기도를 하지 않고 깜박 잠든 탓, 감기가 걸린 것은 오늘 새벽 기도를 빼먹은 탓 등등, 덕분에 나는 또래들보다 인격적인 성장 수준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어떤 친구와 사이가 나빠졌다면,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시험을 잘 못봤다면, 공부 방법이나 자신의 노력에서 문제를 찾는게 우선이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주실까? 난 또 무엇을 못했을까?"를 질문했다.
하루에 한시간씩 읽었던 성격책의 매 구절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그 어린 시절 내게 형성된 하나님의 이미지는 도덕적인 결벽이 심한 잔소리꾼이었다. 그래서 난 마스터베이션 한 번을 할 때마다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화나 가도 욕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냥 착하게 사는게 요구 사항의 전부였다고 해도 힘들었을텐데 성취 지향적인 어머니는 내 학교 성적이나 진로를 하나님의 뜻과 결부시키곤 했다. 본인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머니는 때로 성경 구절을 근거로 자신의 희망하는 길을 걸을 것을 주문하곤 했다. 예를 들면 수시 면접을 보러 가기 한 시간 전 얼굴에 난 여드름을 감추려고 열심히 칼라로션을 바르던 내게, 그 대학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나님이 허락 안 하셨으니 떨어질꺼야." 라는 말을 던졌다. 소심했던 나는 내가 믿었던 신의 이름을 빙자한 그 저주에 멘탈이 나가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게 내가 우리에 갇혀 있던 방식이다.
이 기독교의 신은 특히 두 가지 문제를 남겼는데, 하나는 도덕적 강박으로 인해 내가 자신의 욕망에 직면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 언급한 모든 과정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이 내게 요구하는 삶은 붓다가 버린 고행과도 같았다. 이유도 모른채, 그저 미래에 내가 널 높이 세워주겠노라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참아라, 이런 식이었다. 실은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내게 상존할 무거운 컴플렉스들은 대부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참 재밌었다. 차라리 이슬람교처럼 '신의 뜻대로' 이런 한 마디로 아예 포기를 시키던가. 실날같은 희망으로 고문을 하며 늘 약을 올리더만.
성경의 시편 84편에는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났다고 되어 있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재미가 없기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십대 시절의 교회란, 흔히 예배당을 연애당이라 불렀던 내 아버지 세대의 말처럼, 친구나 또는 여자 친구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사는게 너무 괴로워 도대체 이 하나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인격체와 담판을 지으려고 참석한 수련회는, 선남선녀들이 몰래 가방에 챙겨 놓은 술을 나누어마시며 썸을 타는 곳이었다. 몇 주 뒤, 내가 싫어하던 양아치 한 명이, 날 보고 예쁘게 웃어주던 여자애를 따먹었다는 소문이 남자들 사이에 돌았다. 분명 저녁 예배 때 그 여자애의 아버지, 와이프와 사별한 부목사가 교인 전체에게 자신의 무남독녀의 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지금도 별로 똑똑하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는 특히 바보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전도를 하러 다녔지. 지금 생각하면 퍽이나 비참하다. 전도를 했다는 게 비참한 게 아니라, 애 늙은이마냥 재미 없게 살았던 꼬맹이가 자기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예수님 믿으면 더 행복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던 게 가장 서글프다. 왜 나 혼자 거기서 진지했을까. 십자가라도 지고 혼탁한 교회를 지탱할 생각이라도 있었던걸까? 무너지는 댐의 구멍을 막기 위해 자기 팔을 집어넣은 사람, 그 사람이 감내해야하는 것이 일방적 희생이요, 쏟아지는 것은 격려가 아니라 비난과 조롱이라면, 그 사람은 응당 그 팔을 빼야한다. 설령 그 댐이 무너져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지식은 내게 사후세계는 없노라고 가르치더라. 정말 겨자 씨만한 믿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예전 바이킹들이 수녀원을 약탈하고 수녀들을 강간했을 때, 수녀들은 겁탈 바로 전까지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강간은 강간이었던게지. 그녀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암흑기 시절 내가 마주했던 그 인격체가 정말로 기독교의 인격신인지, 아니 그래도 명색이 세계 3대 종교의 신인데 그렇게까지 인격이 조악할 수가 있는지, 그저 잡귀에 씌였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른다. 사람을 머리 숙이게 하는 것은 고매한 인격이지 폭력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본 기독교 신의 인격 수준은 마치 권력을 가진 다섯 살짜리 황제와 같았다. 그런 존재는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하나님이 내 절실했던 기도를 들어준 적은 없다. '현실' 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보여준 적은 더더욱 없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그런 모호하면서도 포악한 실체를 믿고 현실의 삶을 28배 정도 더 불행하게 사느니, 그냥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하지만 작은 가능성을 안고 살기로, 교회를 갈 시간에 차라리 베트남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이나 연구하며 사후세계를 대비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