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예찬] *12. 소비에트의 필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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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 왜 이리 추워.'

이 추운 겨울 날 달랑 넌닝 빤스만 걸치고 잠자리에 든 나 자신이 지독히 저주스럽다. 보일러라도 켰어야 했는데. 이불을 끌어앉았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금 추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당장 샤워실로 달려가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우는 것이다. 근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샤워실까지 가는 그 십 초를 온 몸 경기내며 거부했다. 너무 추워서 정신이 퇴행된 것일까, 나는 갓난 아기처럼 빼액 소리지르는 길을 택했다.

"엄마, 보일러 불 좀 떼 줘!"

보일러 들어오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하긴 300초 만에 방이 따뜻해질리가 없지. 얼어 죽지 않으려면 지금 샤워실로 가야한다. 자리에 일어난 순간의 추위가 공포스러웠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다. 나는 샤워실로 달려갔다.

백열등에 설치된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작 욕실로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새벽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버티면 막연히 따뜻해질 줄 알았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면서도 몸을 오들오들 떤다. 지독한 감기구나. 어린 시절 눈 덮인 썰매장에서 썰매를 타다가 썰매가 뒤집혀 옷 안으로 눈이 한가득 들어오고 그대로 녹았을 때 이후로 가장 시렵다. 욕조에 물을 가득가득 채워도 오한이 가시지가 않는다.

의문이 든다. 다들 자고 있는데 보일러를 틀어준 사람은 누구일까? 섬뜩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강제로 태어났다. 날 괴롭히는 게 재밌겠지. 지금 얼어죽으면 앞으로 내 고통을 보는 재미가 없을테니 어떤 초월자 새끼가 보일러를 틀어줬나보다. 아 약한 살 가죽과 괴로움을 느끼는 신경 다발을 가진 채 태어난 불행한 인간들아. 불현듯 얼마 전 본 영화에서 수용소에 감금된 포로들이 떠오른다. 아 씨발 그 새끼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걔네들은 이런 뜨거운 물로 샤워도 못했을텐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고통스러운 숙명과 비참한 죽음에 머리를 꽉 잡는다. 눈물이 난다.

긴 샤워를 마치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소련군에 징집된 병사로 싸우는 꿈을 꾸었다.

고통, 고통, 고통. 소비에트의 필멸자들.

불멸자들이 보기에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

내세를 약속하는 기독교는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유학자들은 명예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욕망과 짧은 자극 때문에 사는 건가? 슬프고도 슬프구나. 오만 고통을 견뎌가며 언젠가는 끊어질 의식을 붙잡으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너무 끔찍해.

아침에 열을 재보니 38도. 그 시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