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자전적 소설] 11편

Words
258
Reading
2 min
Listen
Play
9y

HJ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과 로스쿨을 준비하며 만났던 여자이다.

"네가 사랑스럽다."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 "네가 그 사람과 같이 있어서 질투가 났다." 이런 말은 하기 쉽지만,
"현실이 비루해서 너 정도로 타협했어.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중인데 내가 더 잘난 사람이 되서 괜찮은 여자를 만날 때까지 내 옆에 있어줘."같은 말을 대놓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슷한 뉘앙스의 말은 많이 던졌다. 그럼에도 날 만나는 HJ가 그때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능력도 있고 잘 생겼지만 마흔이 다 되어가도록 결혼하지 않은 형이 여자랑 섹스 말고 할 게 있냐고 따지듯 물은 적이 있고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지능이나 공감 능력이 높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형편 없는 여자들의 수는 남자들 만큼 많고 보통은 지적 수준도 의외로 낮다. 섹스 이외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여자는 좋게 말해 태반에 훨씬 미치지 못하더라.

물론 남자가 줄 수 있는 것은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굳이 연인을 만들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관계를 가질 수 있으니 연애에 대한 필요성은 남자 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바람둥이 같은 매력이 있으면서도 자기만 좋아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남자는 보통 없으니 그래서 능력을 보는 것일지도.

여하간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지금은 HJ는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었음을 안다. 비록 참신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한 적은 많지 않았지만, 내 코드가 뭔지 정화히 파악하고 가령 반대하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핀트가 크게 벗어나지 않게 리액션을 취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근데 난 그녀에게 실례 밖에 저지른 것이 없다. HJ와 간 여행에서, 그녀가 다소 저항하자 뚱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뱉었다.

"뭐야, 그래서 여행까지 왔는데 나랑 안 할거야?"

그리고는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늘어지게 잤다. 새벽 다섯 시에 깼는데 그녀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