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검승부의 대명사로 꼽히는 ‘간류지마의 혈투’에 임한 일본 두 검객의 검법은 너무나도 달랐다. 사사키 코지로의 바지랑대란 보통 사람은 들기도 어려운 큰 칼을 휘둘러 상대의 무게 중심을 흔들고 그 타이밍에 다시 칼을 역방향으로 돌려 상대를 베는 동작이 매우 화려한 검술이었다. 반면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도류란 상대의 공격을 검 하나로 받아내고 그 틈에 작은 칼 하나를 상대의 목이나 눈에 재빨리 꽂아 넣는 검술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비겁하다고 평가될 소지가 있었다.
무사시는 애당초 공정한 승부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는 코지로와의 결투 날 일부러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 목숨을 건 진검승부를 앞두고 기다리던 코지로를 초조하게 만들었으며, 결투 장에 나타나고도 싸움에 바로 임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노를 깎아 목도를 만들어 코지로를 분노하게 하였고, 시간을 끈 덕분에 석양을 등지고 싸울 수 있었다. 마침내 결투가 시작하자, 비장하게 칼을 뽑고 칼집을 땅에 던진 코지로에게, 칼이 돌아갈 칼집을 던졌으니 칼이 다시 돌아갈 일이 없고 그래서 코지로는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말로 도발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무사시를 비겁하다고 욕할지 모르나, 위의 기록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래도 무사시는 그나마 정정당당했던 셈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무사시는 진검승부를 한 게 아니라, 일대일 승부를 약속하고 혼자 온 사사키 코지로를 제자 여러 명과 함께 해치웠다고 볼 정황마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자는 무사시였고 그는 지금도 일본의 검성으로 기억된다.
안중근 의사가 열독했다던 무사시의 병법서 <오륜서>는 어떻게 칼을 휘둘러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비즈니스 매너를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구이고, 적으로 분류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친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멈추기 어렵고, 이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7일 후 수정버튼이 생겼군요
이젠 스팀잇에서도 7일 후 글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군요. 7일 지난 글 아래 수정버튼이 생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