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왜곡된 역사를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알때까지 전달하는 역사 지킴이 @actor0801 입니다.오늘은 옛조상님들의 물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이 바둑판을 필자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박성균 아마7단이다. 박사범은 일본에서 순장바둑판을 한 점 구해와 국립민속박물관에 전달한 사람으로 바둑고수이자 바둑관련 유물 수집가이기도 하다.그런 박사범이 일본의 소식통을 통해 바로 이 바둑판 정보를 주어 필자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들이 일본 등 외국에 많이 유출되어 있는데 옛날 좋은 바둑판들도 그러한가 봅니다.)
이름을 짓자면 이 바둑판의 이름은 '대모나전 용 귀문 기반(玳瑁螺鈿 龍 傀紋 碁盤)'으로, 바다거북 껍데기와 소라껍데기로 칠기를 한 바둑판 정도겠다.바둑판은 화려하기 그지없던 나전칠기 기법이 문양의 구도와 대칭에 여백을 주기 시작한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화려함 속에 안정을 추구한 모습이 보는 이를 감탄케 했다. 일단 바둑판을 정리해 보았다.
오동나무에 이중으로 배를 대어 공명음을 발생하게 했다. 조선식 바둑판에 나타나는 형상이다.
(2겹의 오동나무 판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서, 바둑돌을 바둑판에 놓을 때 퉁~~~ 하면서 맑고 크게 울리는 소리(공명음)가 나게 만들었다는.)
네 다리에 괴문을 조각해 달아 맸다. (괴문 - 도깨비 형상.) 소라껍데기로 칠기를 하고 거북껍데기로 용을 장식했다.
19로 줄은 음각으로 은으로 새겨 넣었다.
바둑판에 사용된 거북껍데기는 야기라 부르는 아랍산 거북등껍데기, 즉 대모를 사용했다.대모는 신라시대부터 궁중 사치품의 최고 품목으로 '인도 침향, 아랍 대모'라 할 정도로 귀하고 고가인 재료다. 이 재료로 바둑판을 치장하고 은사입사(銀絲入絲)를 한 점이 돋보인다.(바둑판 19로 줄이 은(銀)으로 만들어서 원래는 빛나는 은색이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듯.)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그러나 용의 발톱이 일곱 개인 것이서 고종시대 제작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일곱 개의 용발톱은 중국황제의 전유물이었던 역사적 맥락을 헤아리면 조선에서 황제로 등극한 분이 고종임금이었으니 그때로 추정된다. 시기는 1897년에서 1900년 사이쯤 아닐까 한다.
원글 출처 : 이청 칼럼 - 사이버오로 2014-01-03
http://www.cyberoro.com/column/column_view.oro?column_no=13770
이 조선 바둑판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동시에 역동적인 것 같습니다.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 (기원전 4년) 1월 기록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죠.
作新宫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궁궐을 새로 만들었는데,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여기 나오는 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은 우리 한국의 정신을 잘 나타내주는 말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누추하게 만들기도 쉬운 일이고, 사치스럽게 만들기도 쉬운 일인데 정말 어려운 것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고수, 장인의 자세라 봅니다.
위 사진의 아래 가야금이 [신라금]이라 하는데요 8세기에 신라에서 만들어진 이 가야금은 현재 일본왕실 보물창고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는데 위 사진의 가야금은 그것을 복원한 거라 합니다.
후기신라(통일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어우러져서 새로운 문화가 꽃피운 것 같고요 저는 이 신라금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라금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oftmanman/4935277)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