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뇌어 보면 인종차별의 시작은 언어의 장벽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크나큰 불리로 작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언어의 장벽과 관계없이 선입견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은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되어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해서 차별을 당하는 것은 자신이 철저히 타자화 되는 경험이라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다닌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영어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또 막중한 다짐으로 타지의 땅을 밟았으나 그게 참 쉽지 않더군요. 이런 저를 살갑게 대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매몰차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들어가는 공동프로젝트를 옆 사람과 짝지어서 해오라고 할 때면 누구 할 것 없이 정말 모세의 기적처럼 저를 중점으로 양옆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죠 (정말 놀라운 경험 이었습니다 ㅎㅎ). 그 당시엔 정말 서러웠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살갑게 대해줬던 작은 성의나마 보여 줬던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렸을 때는 이러한 소외됨을 순전히 인종차별이라고 치부했던 것 같습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시아인’ 이라는 프레임으로 저를 해석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실체는 장벽 뒤에 가려졌으니까요. 그랬기에 인종차별이라는 경험은 편견을 조장하는 사회와 문화에 항거하는 동시에 하루아침에 ‘한국어’ 라는 집을 잃어버리고 타지에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주민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이외에도 또 다른 경험이라면 정말 끈끈한 관계는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나라의 문화와 관습이나 시간적 배경이 달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고 또 서로에게 언제든 도와줄 관계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타지에서 적응하면서 빚은 페르소나를 벗고 그 친구 앞에서 정말 편안하게 같이 찌개를 끓여먹을 수 있을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아마 타지에서 생활을 한번쯤은 해보셨거나 타지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집을 떠나 행복한 사람도 있고 슬픈 사람도 있듯 위에 써 내려간 저의 경험도 아마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지로서의 긴 여정을 걸은 모든 분들에게 단단하게 베긴 굳은살은 항상 ‘타자’라는 징표로서 남아 있겠지요.
많은 분들이 차별을 겪고 타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다른 나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썼지만 아마 대한민국 내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일기 식으로 쓴 이야기 한 편 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타자화 되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걷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편안한 말동무가 되고 싶은 마음에 써 보았습니다. 괜히 더 외딴길로 새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지치더라도 웃을 수 있으시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