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
첫 발령을 받고...
처음 맞은 스승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다른 선생님들 꽃이며 작은 선물, 편지...
학생들에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때는 김영란법이란 것이 없었다.
그저 제자들의 약소한 선물들이었다.
나는 꽃 한송이 받지 못했다.
내가 꽃 한송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흙수저였기 때문에
스승의날에 선물을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다.
나는 특수교사로, 특수학급에 있었다.
일반학교 안에 특수학급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복도에서
나를 만나도 모르는 척 했다.
인사를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랬을까?
.
.
.
학생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특수학급에 다니는 것이
우리나라 안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니까.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특수학급에 다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섭섭했다.
선물의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저렇게 즐거운데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나는 왕따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내가 바란 것은 그저 편지...
혹은 짧은 글 하나인데...
그러던 중 나는 연극 배웠다.
그리고 장애인식 개선 연극을 만들었다.
대본을 쓰고 공연을 했다.
그렇게 7-8년을 연극 대본을 쓰고
여러 곳에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일반학생들과 장애학생들을 모아
동아리 형식으로 중증장애시설에
찾아가는 카페, 명랑운동회 같은 것을 열었다.
나는 이제 욕심을 버렸다.
편지 한 통도...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특수교사로서 나는 그림자로 살겠다고
그렇게 마음 먹고 살았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글하나 바라는 것도
그것도 욕심이고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나의 일만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것...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한정 학생에게 베풀어주는 것...
그것인 진정한 교사로서 삶이라 생각했다.
나와 같이 자원봉사하고
나와 같이 장애인식 개선 연극하며
시골지역에 소외받고 있는
장애학생을 위해 봉사활동을 함께 했던
중학생 제자였던 친구가
벌써 여대생이 되어 편지와 선물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에요!
....
선생님을 뵙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초등특수교육학과에 재학중인
저의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처럼 좋은 분을 뵈어서
제게 명확한 꿈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여중생이었던 제자는 훌쩍 자라
어엿한 여대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했다.
특수교사의 제자는 그렇게
특수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뿌듯한 날이 있을까 싶다.
스승의날 하루 전.
나는 가장 기분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p.s.
선생님들이 바라는 건 선물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바라는 건 제자의 연락입니다.
카톡 문자로 인사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선생님들은 고마워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