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행복한가? 불행한가? 공평한가? 불공평한가? 세상에 절대 백 퍼센트 공평한 시대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아버지는 노가다에, 엄마는 공장으로, 맞벌이에 바쁜 자녀는 학원으로, 혹은 홀로 TV와... 스마트폰과 친구가 된다. 세상살이가 너무나 바쁘기에, 고되고 지친 몸으로, 자녀에 진로나 진학 문제를 깊이 있게 상담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상당히, 그리고 매우 어렵고.. 피곤하다. 엄마, 아빠도 인간이라, 쉬고 싶다... 그래야 내일도 하루살이 하루벌이 삶을 살아야 하니까.
이런 각박한 삶을 살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와 내 자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다. 생각마저 사치 인양, 아무런 생각 없이 드라마와 예능으로 하하호호 웃는 것이 그저 낙이다. 그리고 작고 소박하고 소소한 것 하나가 행복이라 믿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출발선이 너무도 다르다.
부모를 잘 만난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동차와 넓은 집, 부족할 것 없는 의료비, 값비싼 패딩과, 휴대폰... 이런 것은 필요 없다 치자... 상위층으로 이동하기 위한 계단.. 그 계단은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무기.... 모든 것을 이루어 낼 것만 같은 그 "돈"이라는 물질로.. 계단을 오르고 내릴... 기회마저 빼앗고 있진 않은가?
아이들은 지금 얌전해지고 있는, 지배자에게 순종하고 있는 교육을 받고 있진 않은가?라고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수동적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가?
불공평한 세상에서... 그 대상이 장애학생일 때의 출발선은 이미.... 100m 달리기 명단에 이름조차 넣지 못하는 현실임을 절실한다.
가진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부를 대물림 할 때, 노동자들은 노동으로 가난을 대물림하고, 장애학생의 가족은 "장애"로 인해 가난이 대물림되어야만 하는가? 장애 학생은, 부족함 없이 자녀를 출산하고, 같은 출발선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을까? 현실은... 참담하게도...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런 현실이 당연시되어야 하는 것이 공평한 삶인가?? 출발선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걸까?
사회의 정의는 한 표라도 더 많은 대중의 기호에 따라 결정되어야만 하는가...
지금도 어려운 가정형편을 배경으로, 이른바 "흙수저"라 불리는 대학생 청년은 위험을 무릅쓰며 노가다에 간다. 있는 집 자식들은 부모들의 "돈"으로 유학 가고.. 어학연수에.. 대학교 등록금에.. 차를 몰고 최신형 휴대폰을 사러 간다.
이른바 순수한 나만의 노오오오오력으로만, 성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순전히 그 청년의 잘못인가? 그것은 순전히 그 가정, 그 부모만의 노력이 부족해서인가? 그들은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 노동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과연 그들의 노력은 부족한 것인가??
취업을 못하는 장애학생은, 그 학생의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 인가? 아니면, 그들이 못할 것이라는 생각, 장애학생들의 특성을 배려하지 못한 편견을 가진 사회의 잘못이가? 나는 언제까지 열심히 노력하면 기회는 올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희망찬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과연 몇 % 학생들이 안정적인, 고용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 중에 비만인의 %가 높아지는 것이,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한다. 화학적 첨가물 / 유전자 조작된 밀가루와 그 사료를 먹은 동식물을 섭취하게 되는 것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사회의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자.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런 지원도 없다.
파이의 크기는 일정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같이 나눠먹어야 할 파이를, 누군가 한 쪽에서만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혼자 80% 이상의 파이를 가져가서,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만 파이를 대물림하고.. 나머지 20%를 99명에게 공평하게 나눠먹으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20% 파이를 먹어도 좋다. 최소한 없는 집 학생들이, 장애 학생들이, 기초 생활 수급 가정의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평한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통해, 자신만 노력하면, 언제든지 가난에서 벗어나며, 자신만 노력하면 언제든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것이 행복한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