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스무살에 시집을 오셨다. 어머니는 고모와 삼촌이 7명,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 할머니께서도 계신... 그런 대가족의 맏며느리의 삶을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젊고 좋은 나이에...
내 기억 속엔 어머니와 함께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항상 공장에서 미싱을 하셨다. 그리고 밥을 하시고, 설거지를 하시고... 다시 일을 하셨다.
아버지 대가족의 맏아들로...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셨다. 어머니도 아마 중학교를 중퇴하셨나 그랬던 것 같다. 그 시절엔 누구나 학교를 오래 다닐만한 형편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게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학창시절에는 형님과 나의 점심, 저녁 도시락까지 준비하셔야 했다. 없는 집에 두 아들을 남들처럼... 남들과 비슷하게 키우기 위해서 어머니는 참... 힘겹게 살아남아야 하셨을 것 같다.
도시에서 남들보다 궁핍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나는 괜찮지만, 아마도 부모로서 참 마음 한 구석이 아프셨을 것 같다.
어머니의 미싱. 그것은 40년이 훌쩍 넘게...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한 삶의 동반자이자 족쇄였을 것 같다.
얼마 전.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두 아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본가에 모였다. 식당을 예약하고 가려고 해도... 아이들이 어리니까 쉽사리 한 번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그저 용돈을 조금 드리고 올 뿐이다. 그마저도 아들에게 미안한지, 다시 종이 봉투의 얼마되지 않는 용돈을 돌려주려고 하신다. 차에서 다시 내려 겨우 다시 용돈을 드리고 어머니를 떠나 나의 삶터로 자동차를 움직였다.
만약에 지금 첫째 딸 아이가 나를 떠나 생활한다면? 귀염둥이 둘째가 내 품에서 떠난다면??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런데... 벌써 나는 어머니를 떠나왔다. 뭐하나 번듯하게 해드리지도 못하고 말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내가 처음으로 집을 떠날 때... 많이도 섭섭하고 마음이 허전하셨겠지?
못난 두 아들이 아무것도 챙겨드리지 못했는 데... 첫째 손녀가 할머니께 그린 그림을 그렸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고 있는 첫째는 ... 겨우겨우 한 글자, 한 글자씩 할머니께 문자와 이모티콘을 보냈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손녀와 할머니가 나눈 첫 번째 대화이다. 스팀잇 블럭체인에 기록하여 영원히 남겨지길 바래본다.
그리고
다음 생에는 어머니가 내 딸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내가 받은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나도 어머니께 사랑을 되갚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