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 제법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20대 초중반 그 녀석과 자주 어울렸다.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서로 간의 부끄러운 과거사, 망가지는 술주정 ... 그 모든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다.
솔직히 마음이 편했다. 어려운 우리 집안 사정과 ... 그 녀석의 집도 많이 비슷했었다. 나도... 내 친구의 집도 달동네 허름한 주택이었고, 도시였지만 재래식 화장실. 친구와 나는 개뿔도 아무도 없는 처지였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가려고 발버둥쳤었다.
아... 앞으로 뭐하지?
니 딴 놈이 연애는 할 수 있을라?
어디로 취업하게 될까?
친구 집에 누워 이런저럭 얘기도 많이 했다. 그랬던 친구는... 각자 결혼과 함께 생활근거지가 멀어지며 소홀해졌다. 1년에 한 두번 보는 정도가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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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그녀석은 세 아이의 아빠.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자동차로 5시간 거리만큰 떨어져 살다가, 친구가 우리 동네가 출장을 왔다. 당연히 집으로 초대를 했었고,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는 차가 바뀌었다. 저녁을 먹으며 소탈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친구의 집은 많이 나아져있었다. 아파트, 주택, 넓은 땅까지... 당연히 부모님 소유지만, 외동 아들이라 어느 정도는 당연히 물려 받는다.
오래 떨어져 있었지만, 금새 나는 친구에게 "여유"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재산은 부모님의 것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여기에서 말로, 글로 표현 할 순 없겠지만....
나만이 느끼는 상대적인 거리감? 이질감? 그런 간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론 저만치 멀리 걱정거리를 덜어버린 친구가 상당히 부러웠다. 이제는 나완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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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주말엔... 본가에 방문했다. 경상도 남자. 그토록 나에겐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손녀와 손자에겐 애틋하다. 내가 노가다로 이곳저곳에 상처가 나도 괜찮냐고 말 한 번 없으셨다. 거의 매 학기 장학금을 타왔지만, 수석졸업을 했었지만... 내 어깨 한 번 토닥여주지 않는 분이셨다.
할아버니가 되신 아버지는, 많이 바뀌셨다. 손녀를 위해 새벽 같은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김밥을 사러 가러 가신다. 아이들이 사랑해요라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면, 아버지도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다.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눈도 잘 안보이시는지... 공장에서 미싱도 잘 못하신다. 그 어린시절 아버지는 형제들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초등학교도 중퇴하셨다.
물려받는 재산이 없다고 ...
등록금과 생활비를 힘들게 벌었다고 ...
결혼할 때 아파트나... 도움을 못 받았다고 ...
어느 한 구석에 간사한 마음, 허망한 마음을 먹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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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기는 다르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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