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가 아니다. 부자도 아닌데,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우리 가족은 그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었던 것 같다.
부자가 되려면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지난날 나와 우리 가족이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더 그렇다.
과거를 돌아보았다.
우리집은 미싱을 했다. 외가댁에는 농사를 지었다.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100% 적중했다.
아... 우리집은 돈을 많이 못 벌겠구나.
어떤 구체적인 정보나 통계는 없었다. 하지만 그당시 중국산 농산물, 중국산 의류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수입된다는 뉴스를 보았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나오시지 못했다. 7남매의 가장으로, 어린시절부터 일을 하셔야 했다. 아버지는 10대 후반부터, 계속 미싱만 하셨다.
그랬다. 아버지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다보면, 내가 일한만큼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거짓말처럼... IMF 와 함께 경제 위기가 왔다. 우리 집의 미싱은 멈추었다. 어머님은 간간이 파출부 비슷한 일을 하셨다. 아버지는 술만 드셨고, 가끔 동네 사회복지일자리 비슷한 것을 하셨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어머님의 말을 들었다면.... 만약 15년 전, 어머님께서 집을 사자고 했을 때, 고지식한 생각을 버리고... 그 집을 샀었더라면....
직업을 바꾼다는 거나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셨던 거다.
늘 하던 방식, 늘 추구하던 패턴만을 고집하신 거다. 그래서 15년 동안, 우리는 월세와 전세를 빙빙돌며 살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어머님은 큰 결심을 하시고... 나의 손을 잡고 어떤 집에 가셨다.
엄마가 보니까... 철이가 이런걸 잘 보더라.
철아... 이 집... 우리가 사려고 하는데 어때?
생전 처음으로 우리 집을 사느냐, 다시 월세살이를 계속하느냐. 그 당시 집은 7천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단순히 7천만원이란 돈과 그 집의 크기를 비교해보곤... 사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어머님 말씀으로, 집을 매매하는데 내 영향이 조금은 있었다고 한다. 지금 부모님의 주택은 당연하게도 2억은 넘는다. 아마 그때 못샀더라면... 지금도 부모님은 집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팀잇(steemit.com)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나름 홈페이지도 만들어본 적도 있는데... html 몇 개만 만지던 나에겐 많이 어려웠다.
스팀잇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의 상당수가, 암호화폐나 IT 계열의 이야기라 어려웠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변화에 민감하고 싶었다.
블로그 활동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강력한 매력을 느꼈다.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 주변 이웃에게 주어지는 보상 시스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반 사람들은 코인충이라 부르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있다. 과도하게 빚을 내어,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하지만 암호화폐, SMT, 블럭체인에 대해 공부해 보지도 않고, "코인충"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눈에는 그 사람이 더 바보다. 그 사람은 과거의 우리 가족처럼,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색안경을 끼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간다. 자동화 공장으로 노동자들이 점점 더 필요 없어진다.
공장에서 직장을 잃고 나서야, 그때도 "코인충"이라 비난하며 살 수 있을까?
나와 우리 가족의 과거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면
우리는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정작 코인충을 비난하던 사람이, 도리어 "그지" 처럼 살수도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