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전역하고 나는 대학을 다시 들어 갔다.
24살? 그 당시 들어간 대학은 심리치료와 관련된 학과였는데
내가 그 학과를 다니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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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20대 초반 선배들에게 인사하며 지내는 것은 견딜만 했다. 대학교 선후배? 그게 뭐라고... 나도 동갑이던 친구들은 복학하고 3-4학년이었는데, 친구를 먹고 지내진 않았다.
보이지 않는 거리감.
대학교에 늦어 들어온 나이 많은 학생.
이렇게 저렇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나름 그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차피 당장에 장학금과 생활비가 급해서, 학과생활이란 것을 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남들 보다 조금 늦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독학으로 혼자 수능을 준비하다보니, 목표했던 특수교육학과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상위권 학생들만 지원 가능한 교직이수를 했다. 나는 교직 복수 전공을 더해서 교직 자격증이 2개였다. 이제는 교직이수과목을 위해 사범대학교에서 가끔 수업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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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이상한 이질감으 또 들었다.
사범대에 다니는 친구들이 교직이수자들을 경계하고..
너는 사범대생이 아니잖아? 라는 마인드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 이해했다. 그렇다고치자..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그 생각은 한 순간에 날아갔다. 중간고사 기간 200명이 넘는 큰 강의실에서 시험을 보는데... 사범대 학생이 컨닝을 하고 있었다.
개뿔 사범대는 무슨...
역시나 사람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었다. 괜히 나이가 많아서? 좋은 대학이 아니라서? 괜찮은 학과라 아니라서? 라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었다.
자부심은 본인에게 느끼는 것이었다.
임용에 합격하고 일반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일반교사들이 다수인 학교. 특수교사는 나 한 명 뿐이었다. 같은 대학교, 같은 교과, 선배 후배들 사이에서... 역시나 참 끼어들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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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한민족, 단일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강한 응집력을 키운다. 하지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너는 내 식구
너는 남 식구
팔이 안쪽으로 굽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것이 너무 심한편이다. 권력형 비리, 낙하산 인사.. 이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게 가장 먼저 사라져야할 적폐가 바로 이런 내 식구 감싸기, 지역감정 유발 등 니편내편 나누는 문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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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주의? 내 조직, 내 가족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스팀잇에서 나는 뭘까?
오프라인 모임을 한 적이 없으니... 나는 아싸인가?
나름 1년 이상 ... 명성도가 61... 나는 인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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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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