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시간. 깨진 유리창의 이론 관한 내용이 있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장난 두 대의 자동차가 있었다.
두 대 모두 봇닛을 열어 두었다.
다만, 한 자동차의 유리창을 고의로 조금 깬 상태로 두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한 자동차는 멀쩡했지만, 유리창을 조금 부서둔 자동차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베터리를 빼갔고, 타이어를 훔쳐갔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발로 차고, 자동차는 엉망이 되어 부서져 있었다. 깨진 유리창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이것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학교에서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친구들이 왕따를 당해도, 은따를 당해도.. 침묵한다. 저 녀석은 저럴만 하니까 당하는 거다라고 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도 한다. 일진에게 구타를 당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학생들은 방관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침묵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어른들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따돌림이 있다. 상관의 부당한 지시가 있다. 성희롱이 있다. 우리는 많은 부분, 지금까지 그러한 부당함에도 침묵해왔다. 그리고 그 침묵이 더 현명한 선택임을 서로 위로해 왔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라는 논리 앞에, 많은 부당함이 더 많이 행해져 왔다. 갑질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고, 상대적 약자들은 강자 앞에 고개를 떨궈야 하는 것이다.
갑질은 그동안 많이 숨겨져 왔다. 하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다. 갑질이 언론에 보도되고, 부당한 기득권의 적폐가 심판받고 있다.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사람들은 다시 만들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어쩌면 스팀잇의 진정한 가치는 언론의 보장이라고 말이다. 처음에 나는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고,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하고 있데... 무슨 언론의 보장을 말하는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언론이 통제되지 않고, 우리가 방관자로 살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채널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팀잇을 통해 각종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앞으로 정치글, 내부 고발, 양심선언... 점점 더 기관과 기업체의 투명성과 신뢰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보팅과 댓글, 리스팀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스팀잇 내부 언론사들은 사람들이 주목한 이슈를 보도할 것이다. 과거에는 기자 중심의 보도가 있었다면, 앞으론 대중들 중심의 보도가 더 활발할 것이다. 그렇게 밑에서 부터의 변화의 중심에 스팀잇이 있을 거다. 그랬으면 좋겠다.
세금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자, 뇌물을 받은 정치인, 부당한 뒷거래를 진행하는 사업가 ... 이들은 잘못된 행동이 사소할 수 있으나, 깨진 유리창처럼... 더 많은 부당함과 사회 악영향을 유발할 수 있다..... 뉴욕에선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하여, 지하철 범죄를 줄이기 위해 차량의 낙서를 다 지웠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낙서를 지운 행동들이 모여 범죄율이 줄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부당함과 갑질, 기득권의 부패와 타락된 행동들을, 우리들의 작은 행동 변화 하나로 예방할 수 있음을 잊지말자. 우리가 방관자에서 감시자, 참여자, 주인의식을 갖출 때, 우리들의 자녀는 보다 더 훌륭한 세상에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