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본가에서 김치 두 통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타지에 나와 생활하고 있는 절 엄마처럼, 때론 언니처럼 물심양면으로 돌봐준 분이 있는데요.
엄마가 그분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일 김치가 쉴까 봐 걱정이라며 빨리 갖다 드리라는 성화에 약간 심통이 나 있었습니다.
'김치 좀 쉬면 어떻다고 저러시나'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전주에서부터 김치를 들고 오는데 냄새도 나고 무겁기도 하고, 버스 아래 짐칸에 싣는데 정말 짐처럼 느껴지더군요.
우리 엄마는 왜 이런 거로 감사 표현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언니가 좋아할 것 같지도 않다며 속으로 구시렁댔습니다.
요즘 세상에 김치 선물이 웬 말이냐는 생각이었죠.
이 보따리는 막상 서울에 가지고 온 후에도 문제였어요.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김치 전달에 난항을 겪게 되었습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저 김치가 밉더라고요.
일정은 계속 어긋나고, 김치를 전해드리는 것 자체가 짐이 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더는 일정을 물어보기도 죄송해 택배로 보내려던 찰나, '김치가 쉬면 어떡하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엄마에 그 딸인 거죠.
그러던 오늘!! 약속 하나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갑작스럽게 김치를 전달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레슨이 있어 레슨하는 곳에 김치 보따리를 들고 갔습니다.
가르치는 학생이 이게 뭐냐고 묻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치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선생님이 좀 멋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슨을 마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요즘 보기 힘든 이 보따리 때문에 시선 집중.
가뜩이나 만원인 지하철에 겨우겨우 구석 자리를 양보 받았습니다.
목적지인 아현역에 도착!
아이들이 지나가는 예쁜 길을 저도 보따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슬슬 김치가 무거워질 때쯤 시기적절한 문자가 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해주는 언니가 참 고맙습니다.
김치를 들고 제가 온 곳은 '뮤지스땅스'.
지인들이 많이 공연하던 곳인데 공연도 아니고, 합주도 아니고, 김치때문에 와보게 되었네요.
이 사진의 제목은 보따리X뮤지스땅스로 정했습니다.
이런 곳에 김치를 들고오다니... (좌절)
의도하진 않았는데 분장실과 김치 보따리가 잘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기어이 김치를 한 입이라도 먹어보자는 언니의 말에 <음악인들의 지하본부 뮤지스땅스>에서 김치를 개봉했습니다.
저도 김치는 처음 보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엄마에게 보내드리라며 찍어주신 사진.
별 것 아닌 듯하면서도 엄마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에 뭉클해지는 하루였습니다.
그간 김치때문에 알게 모르게 삐져있던, 귀찮아하던 제 모습이 문득 미안해졌어요.
그리고 이런 멋진 선물을 준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겸연쩍은 마음을 담아 낯간지러운 말을 해보지만 엄마는 온통 김치에만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까요.
언젠간 엄마의 촌스럽고 투박한 보따리가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