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사적인 사진이다. 소중한 이에게 받은 수첩이다. 이런 사진을 올릴 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작년부터 여행에 가거나,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이나 꽃, 풀잎들을 보면 주섬주섬 주워오게 되었다. 그런 것들은 일기장에 붙여지거나, 다른 이에게 편지로 전해지곤 했다. ((그래서 오늘 보얀(@levoyant)님의 글을 봤을 때 반가웠다. (늦더라도 댓글을 달아볼까?))
오늘은 간만에 맞는 휴일이였다. 며칠 전부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지만, 마음이 편했는지 한두 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었다. 선잠과 함께 기묘한 꿈을 꾸었다. 일어나선 책을 읽었다.
어제는 연체가 한참 된 책을 반납했다. 자연스럽게 한동안 책을 빌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쩐지 속이 다 후련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저주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오늘 읽은 책은 심리 에세이였다. 원래 나는 소설만 읽지만, 선물 받은 책이라 한 번은 읽고 싶었다. 읽으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못 읽고 반납한 저번 책과는 달리 술술 읽혔다. 책에선 집요하리만큼 유아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와닿진 않으면서도, 몇 부분은 공감이 돼 밑줄을 긋기도 했다.
뒹굴거리기도 하다가, 연습도 하다가, 뭘 주워 먹기도 하다가, 짧은 산책도 했다가, 다시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책 한 귀퉁이에선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의 일화가 나와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보고 우울증은 체조만 해도 낫는다고 조소했던 이야기였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미시마 유키오도 스스로 할복해 죽었다)
이상한 데에 꽂혀 읽던 책을 접었다.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었다.
책을 읽게 되면 왜 책에 나오는 여자에게 이입하게 되는 걸까? 실제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오롯이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번 그런 기분을 느꼈다. 왜지?
오늘 보려고 받아 놓은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였다. 며칠 전부터 OST를 들었다. 몇 년 전에 봤는데, 그때도 이 영화가 좋았다. 나는 대놓고 촌스럽고, 대놓고 뻔한 영화를 가끔은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런 류다. 영화에 짙게 배어있는 음울한 기운도 좋다. 기타노 다케시도 좋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좋다.
< Joe Hisaishi - Thank You...For Everything >
며칠간 이 곡을 무척 많이 들었다. 가볍게 듣기엔 무거웠지만 어쩌다 보니 계속 듣게 됐다. 곡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엔딩인데,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겐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다른 곡을 하나 더 얹는다.
(그래도 역시나, 처음 올린 곡이 훨씬 더 좋다)
오랜만에 읽은 책은 참 좋았다. 예전부터 일본 소설을 좋아했다. 그때는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를 좋아했는데, 그때도 다자이 오사무가 싫지 않았다. 인간 실격을 꽤 여러 번 읽었었다. 그 무렵 다자이 오사무는 내가 읽던 책 중에선 꽤 무겁고 진중한 작품에 속했다.
요즘의 내가 다시 읽는 다자이 오사무는 새로운 느낌이다. 어두워서 좋았던 글들이, 너무 어두워서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기엔 내가 너무 밝아져 버린 것도 같다.
아까 읽던 심리학책에서는 양가감정의 통합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나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행복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어두운 부분을 아주아주아주 깊은 곳에 잘 묻어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시 드러나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시간이 금방 지나 하나비는 못 봤지만 하고 싶던 일들을 꽤 많이 했다. 오랜만에 혼자 맥주도 한 캔 마셨다. 그래서일까?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두서없이 주절대고 말았다. 좋은 휴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 몇 개만 남겨본다.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밤이나 매화꽃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루 끝의 유리문을 열면 언제나 매화 향기가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월 말경에는 저녁이 되면 으레 바람이 일어 내가 저녁 어스름할 때 식당에서 상을 차리고 있으면 창으로 매화 꽃잎이 날아와 그릇 속에 떨어져 물에 젖곤 했다.
아. 아무것도, 전혀 숨기지 않고 쓰고 싶다. 이 신장의 평온 모두가 거짓의 표면, 그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
'사랑'이라고 쓰니까, 그 뒤가 써지지 않는다.
나는 전등을 껐다. 여름 달빛이 홍수처럼 모기장 속에 넘쳐 들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때는 틀림없이 진지한 얼굴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