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언을 구할 일이 있어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단락돼 전화를 끊으려는 와중에 지인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곧 내 생일이 돌아오니, 조만간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생일을 기억하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가족과 유일한 친구 한 명의 생일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생일은 5월 12일이 아니면 5월 31일인데, 몇 년째 그걸 확인하질 못했다. 게으름을 핑계로 그 친구에게 몇 년간 생일 축하 문자 하나 보내지 않았다.
나도 옛날에는 몇몇 이들의 생일을 기억했다. 기억했다기보다는, 챙겼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일에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했다. 선물을 받으면, 선물을 준 사람의 생일을 챙겨야만 한다는 의무감.
나에게도 서프라이즈 이벤트와 같은 즐거운 생일의 기억도 몇 있다. 어쩌다 보니, 그때 내 생일을 챙겨주던 누군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일이 더러 있다. 그 당시 그들에게 받은 축하는 어떤 한때를 같이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이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이 내게는 못내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되돌아보니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던 지인은 어느새 십년지기가 되어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어떤 달에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는 편하지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기에, 정말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내 생일은 이미 잡힌 일정으로 가득했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인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괜히 캘린더에 등록해놓고 1년 반복 버튼을 누르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태어난 계절 정도는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생일이 아니더라도, 내 나름의 생일 선물을 생일이 아닌 어떤 때에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 생일 언저리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그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된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계절 안에서, 그가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