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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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호 일기가 내 글쓰기 호흡과 잘 맞는 것 같다.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하는 것보다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쳐내지 않고 다다다다- 쏟아내는 게 편하다. 나의 번호 일기는 내 의식 흐름과 맞닿아 있다.

2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이동 중에는 잘되지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멍 때린다. 오늘은 그간 쌓인 일들을 정리하며 번호 일기를 쓴다.


3

오늘 점심 식사는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 세트였다. 나는 맥주와 탄산수를 제외한 탄산음료를 일절 먹지 않아 햄버거 세트도 커피로 바꿔 마신다. 맥도날드 아이스 커피는 추가 금액이 없고, 아메리카노는 1,000원을 추가해야 한다. 기분에 따라 다른데 오늘은 돈이 아까워 아이스 커피를 선택했다.

햄버거를 커피와 함께 먹어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탄산음료를 먹지 않지만, 햄버거와 콜라를 같이 먹는 이유를 커피를 마시자마자 몸으로 느낀다. 햄버거와 커피는 최악의 궁합이다. 게다가 맥도날드 아이스 커피는 특히 더 최악이다.

4

'커라밸'을 맞추려 노력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에 커피 한 잔만 먹는다. 건강을 위해 참는 것이므로, 그 한 잔이 무척 중요하다. 애매한 것은 오늘 같은 날이다. 맥도날드 아이스 커피를 한 잔으로 생각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5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타야하기 때문에 커피를 마셔도 된다는 궁색한 변명을 찾았다. 정류장 근처 카페에서 1,000원짜리 커피를 팔고 있었는데, 맛이 없을 것 같아 평소 자주 가는 카페로 갔다.

가다 보니 날도 덥고 비효율적인 것 같아, 반쯤 온 길을 되돌아가 1,000원짜리 커피를 샀다. 그 와중에 맛있게 먹겠다고 샷을 추가했다.

정류장에 오자마자, 커피를 버스에 못 들고 탄다는 것이 생각났다. 장난처럼 내가 탈 버스가 전 신호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래서 샷 추가한 커피를 단번에 마시고 버스에 올랐다.


6

최근 내 일상의 화두는 아끼던 마우스를 잃어버린 것, 그리고 새로운 안경을 맞춘 것이다.

7

아끼던 마우스는 정확하게는 로지텍 MX Master 2S. 잃어버린 날, 잠을 설쳤다.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게 얼마 만인지. 최근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다.

8

나는 '물건 잃어버리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람이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지갑이 20개는 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대개 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거나(카드를 잃어버린 횟수는 40번 정도), 필요에 따라 10,000원 미만의 천 쪼가리에 명함이나 쿠폰 같은 걸 넣어 다닌다.

9

가끔 '물건 잃어버리기' 이야기가 나오면 은근한 배틀이 시작되곤 한다. '난 여기까지 잃어버려봤어!' 식이다. 대개 이기는 사람은 나였다. 나에겐 강력한 한방이 있다.

기타를 잃어버렸었다. 더 정확하게는 에피폰 기타.


10

어렸을 때는,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여러 팀과 함께하는 공연이었는데, 우리 팀원의 기타를 챙기다 미처 내 기타를 챙기지 못했다. 집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 등에 메고 있던 게 내 기타가 아니라는 것을.

11

그 기타는 고등학교 수학여행과 맞바꾼 것이었다. 엉엉 울었다.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그때 공연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내 기타를 보지 못 했냐고 물어봤지만 모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난 그들 중 한 명이 가져갔다는 걸 확신하면서, 내 기타를 가져간 그 사람을 평생 불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당연히 내 실수였지만, 그때는 누구 탓이라도 해야 마음이 풀렸다. 그러고 나서 돈이 없어 콜트 기타를 샀던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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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 좋게 마우스를 4번의 통화를 거쳐 찾게 되었다! 워낙 복잡하게 꼬여있어 주말 지나고야 받을 수 있지만, 찾았다는 게 기적이다. 아직은 따뜻한 세상이다.


13

새로 안경을 맞췄다.

14

난시와 짝눈이 심해 공연 때는 일회용 렌즈를 낀다. 며칠 전 공연 때 렌즈를 꼈는데, 오랜만에 껴서인지 몹시 불편했다. 이물감을 참지 못하고 공연 4분 전에 급하게 렌즈를 뺐다. 이런 식의 도박을 계속할 수 없어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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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맞추기는 연례행사다. 첫 번째 안경은 너무 어지러워서 한 번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버렸다. 두 번째 안경은 안경이 너무 잘 흘러내리고, 초점이 안 맞아 쓰다가 말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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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검사를 하니 안경사가 그간 이런 눈으로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봤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시력 차도 심하고, 한쪽은 난시가, 한쪽은 근시가 심해 일상생활에서 매우 어지러웠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간의 만성적인 피로가 왜곡된 시각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니. 나는 당황해 "제가 운동을 안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했고, 나의 바보 같은 말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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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개의 안경은 꽤 비싼 값을 들여 맞췄다. 이왕 사는 거 '비싸면 좋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싼 돈을 들였지만, 그 돈의 1/10 값어치도 못 하고 버려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저렴하게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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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선 두 개의 안경보다 어지럼도 덜하고, 착용감도 좋았다. 세상이 선명하고, 더 깨끗하게 보인다. 그래서 사고 회로를 바꿨다. '비싼 게 다 좋은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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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리하고 간단한 사고로 살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싼 게 더 좋겠지'라거나 '비싼 게 다 좋은 건 아니지'와 같은 생각 말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가볍게 뒤로 미뤄놓는 간편한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20

나는 곧, 세상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수학자들의 세상이 도래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수학적 사고를 안 하려하므로, 또 조금만 복잡해지면 거리를 두고 미뤄놓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 안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노예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고, 반쯤 카페인에 취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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