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성당에 갔다. 10년 전 세례를 받았지만 신을 믿지 않아 애매한 상태다. 그래서 가끔은 종교가 없다고 하거나, 때에 따라 세례는 받았지만 냉담자라고 말할 때도 있다. 어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도울 일이 있어 성당에 갔다.
일을 하다가 본당에서 기도하는 한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깊이 몰두한 모습이었다. 나도 조금은 신을 믿고자 하는 여지가 있다. 할머니의 시선이 닿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냥 스테인드글라스인데. 그때 성당에선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빗소리를 들으니 자연스레 어떤 때가 떠올랐다. 어떤 때라는 것은 그 시절을 함축하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한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뚜렷한 한 장면이 그때를 상징하는 시퀀스같다.
5년 전이었나, 공연하러 부여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나는 역시나, 한 남자에게 미쳐있었다. (이렇게 쓰니 무척 상투적인데, 정말이다)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떠내려갈 듯 비가 쏟아졌다. 와이퍼를 움직여도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였다. 우리는 위험할 것 같아 잠깐 차를 멈추고 갓길에 서있었다. 나는 끝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 사람과 이 차 안에 갇히면 좋겠다는, 그리고 그 비가 영원히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쳐 가는 가벼운 생각이 아니라 그럴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가끔 그를 생각하면 이 장면이, 그때의 절절했던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사랑은 광기를 수반하는 것 같다. 돌이켜봐도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표현보다는 미쳐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나는 전공이 사랑인 걸까? 한 남자에게 열 번 이상 고백했던 적도 있다. 안 지 일주일도 안 된 남자에게 빠져 인생을 포기하려 했던 적도 있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내 인생의 구원자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그것을 믿는 방식이 내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와 끌어안고 있으면서 이대로 세계가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다거나, 함께 있는 차 안에서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차로 갈 수 있는 세상의 끝이 바다라면 그 바다로 기꺼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손톱을 물어 뜯으며 생각한다. 이런 기형적인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런 깊은 결핍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