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늦잠을 잤다. 한 시간만 더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게을러져 쉽지 않다. 알람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긴 싫어 삶의 여유라는 명목으로 늦잠을 즐기고 있다. 그래도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면 좋을 텐데...
대충 씻고, 산책을 나섰다. 어제 들은 알 재로를 이어 들었다. 어제는 못 견디게 좋았는데, 오늘 들으니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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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와 음악 취향에 관해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대화가 귀찮았는지, 아니면 좀 더 편리한 방법을 택하고 싶었는지 그는 말없이 휴대폰에 담아둔 음악을 보여줬다.
음반 목록을 보니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저도 이 앨범 좋아해요. 이 앨범에 이 곡이 진짜 좋은데!"라고 말하며 앨범을 눌렀다. 그런데 앨범엔 한 곡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당황한 마음에 다른 앨범도 눌러봤지만 마찬가지였다. Relaxin'에 4번 트랙만 덩그러니 있는 장면은 특히 더 이상했다. 이 앨범은 청아한(?) 카운트 소리와 그 위에 얹어지는 종소리 같은 Red Garland 연주로 시작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 "앨범 채로 듣진 않나 봐요?"라고 물어봤고 상대방은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음반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한다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당황한 마음에 "아, 이래서 요즘은 디지털 싱글을 많이 내는군요."라는 이상한 말까지 뱉어 버렸다.
3
나의 청취 패턴을 돌아본다.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앨범을 한 곳에 몰아넣고, 랜덤 재생을 누른다. 눈에 띄는 한 곡이 있으면 '좋아요'를 눌러 저장해두고, 그 곡이 정말 인상 깊으면 그때부터 앨범을 듣기 시작한다.
따지고 보니 나도 앨범에 있는 곡을 따로 떼어 내 듣고 있었다. 앨범이 워낙 많다 보니 무작위로 나오는 곡은 대부분 감흥 없이 소모된다. 그 사람이 보여준 리스트는 앨범 자체로 본다면 불완전하지만, 적어도 그 곡만큼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니 그 청취법이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것도 같다.
4
알 재로의 음악이 별로라, 다른 곡을 듣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애정하는 주기가 갈수록 짧아진다.
요즘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귀찮아 사서 마신다. 그러면서도 찬장에 있는 원두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럼 귀찮은 마음으로 투덜대며 커피를 내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커피 내리는 일상의 여유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도.
모두 같은 범주에 있는 것 같다. 다행인 건 언젠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자연히 애정하게 된다. 금세 알 재로가 좋아지겠지. 원두가 떨어지면 다시 커피를 내리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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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나이 듦'의 영역으로 치부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귀찮아지는 것, 열정을 잃어가는 것, 애정할 대상을 잃어가는 것을 '나이 듦'이라는 간단한 핑계로 슬쩍 넘어가야 할까? '나이 듦'이라는 것은 내 모든 게으름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인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아직 어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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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산책로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때엔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었다. 어릴 땐 학생을 보며 감정 이입을 했는데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아이로 보인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문득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나도 아이를 낳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나 하나 건사하기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를 애정할 마음의 공간이 있을까? 그 공간은 원래 비어 있는 걸까, 아니면 아이를 위해 일부를 내어놓아야 하는 걸까. 그것은 일부일까? 아니면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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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생각의 갈래는 뻗어가는데, 하나도 정리되는 건 없다. 질문을 던지긴 쉽지만, 파고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이럴 땐 연습을 하면 좋다. 나의 좋은 회피 방법이다. 뭐가 됐든, 몰두하다 보면 이런 상념이 들 새도 없다. 눈앞에 있는 것을 해결하기만도 버거우니까. 게을러지니까 자꾸 생각만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