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아프면 무엇하나.
발리로 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동생이 앞자리에 앉았는데, 기사님이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그렇게 그 둘의 대화가 시작됐다.
둘 다 오랜만에 쓰는 일본어가 반가웠는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인도네시아에 관한 이야기부터 일상에 관련된 사소한 이야기까지. 동생은 틈틈이 우리에게 대화 내용을 번역해주었고, 우리는 딴짓을 하다가, 둘의 대화를 엿듣다가 했다. 동생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한 달 월급이 8만 원이래."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잠깐 주유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가 동생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일본어를 잘한대?" 동생이 말했다. "20년 전에 일본에서 3년간 일했었대."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몇 가지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모른 체했다. 동생이 전해준 마지막 이야기에서 결국 터지고 말았다. "엄마, 일본이나 한국을 놀러가보고 싶은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그건 정말 '꿈'일 뿐이래."
나는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이 다 마음 아팠던 사람이다. 꽃이 지면 꽃이 져서, 꽃이 피면 꽃이 펴서 마음이 아프곤 했다. 나는 필요 이상 몰입하기가 전문이었다. 영화를 봐도 주인공에 너무 깊이 이입해 한참을 빠져나오질 못했고, 실제 삶도 그랬다. 나는 스스로 사람들의 감정의 쓰레기통, 혹은 해우소가 되길 자처했으며 그로 인해 몇 날 며칠을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음 아파하던 중 사귀던 남자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마음만 아프면 뭐해?"
따뜻한 마음씨의 증거처럼 느껴졌던 나의 '마음 아파하기'가 못 견디게 부끄러워졌다. 그 말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마음만 아파하고, 거기서 끝이었다. 무언가 더 나아가거나 근본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마음 아픈 모든 상황을 피했고,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스스로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마음만 아프면 뭐해?'. 그럴 때마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주문도 먹히질 않는다. 하루종일 울퉁불퉁한 도로를 운전하고도, 한 달에 8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해본다. 20년 전 일본에서 허드렛일을 했을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20년간 그곳을 그리워했을 그 사람을 떠올린다.
나는 단 한 번도 말 그대로 '꿈'일 뿐인 꿈을 꿔본 적이 없다. 내가 꾸는 꿈들은 허황된 것도 있었지만 적어도 얼마 이상의 실현 가능성은 있었고, 살면서 한 번쯤은 일어날 법한 그런 꿈들을 꾸곤 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사람의 월급을 굳이 한국 돈의 가치로 환산해서 마음 아파할 필요가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폭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어쨌건 그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이 그를, 그리고 나를 마음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고작 동생에게 팁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그는 우리를 숙소에 내려주었고, 우리의 숙소는 8만원보다 비싼 곳이었다. 문득 지나치게 화려한 숙소가 부끄러워졌다. 이제 곧 자카르타로 돌아갈 테고, 나는 그곳에서 훨씬 더 많이 마음 아파할 것이다. 나는 이따금 팁을 주고, 싸구려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이곳에 있으니 지는 노을마저 마음이 아파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