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선 울면서 양파즙을 먹었다. 편식이 심한데, 몸에는 좋다 하니 코를 꽉 막고 먹었다. 양파즙을 마시는 내내 이건 어니언맛 쥬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양파'보다는 '즙'이 문제였던 것 같다.
양파즙을 먹고 바로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곤 나중에 아이에게 어떻게 양파즙을 먹여야 할지 걱정이 됐다. "엄마는 안 먹잖아!!!"라고 하면 어떡하지?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양파즙을 마셔야 할지, 잘 타일러야 할지, "이거 안 마시면 엄마처럼 돼"라고 해야 할지... 셋 다 좋은 답은 아닌 것 같다.
엄마가 되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를 최대한 미루거나, 가능하다면 영영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럼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이런 고민을 내비치면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말해준다. 뭐가 됐든, 일단 나이가 들어야 할까?
요즘은 알게 모르게 날이 서 있다. 나도 모르게 때때로 날카로운 눈빛을 짓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얼마 남지 않으면서도, 꽤 남은 이사 때문일 것이다. 새집 계약이 끝난 후로 지금 있는 집에 있는 것이 무척 불편해졌다. 가능하면 빨리 떠나고 싶은데, 적어도 보름 이상은 이곳에 있어야 해 괴롭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내게, 타인이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은 공포로 다가온다. 부동산에 집 비밀번호를 알려준 후로는 밤 열 시가 넘으면 이중 잠금을 한다.
쓸데없는 불안함이지만, 생각해보면 2년간 이 집에 들렀던 사람은 다섯 명도 되지 않는다. 차가 없는 나는 가끔 악기를 실어야 할 때 사람들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게 됐는데, 그때마다 나는 도착 10분 전부터 악기와 케이블, 스탠드까지 미리 내려놓고 그들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그걸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배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결벽이었던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 동안 이 동네에 있었다. 단골 가게가 생길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카페건 음식점이건 좋아하는 곳은 몇 번씩 들렀지만, 주인이 조금이라도 아는 체를 하면 그다음부터는 가지 않았다.
몇 달 전 집 도보 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이 좁은 동네에 스타벅스가 몇 개냐며 투덜댔지만, 생각보다 쾌적해 자주 가게 됐다.
아침 작업을 그곳에서 하게 되면서 더 자주 가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매장에 있는 직원의 얼굴을 모두 익히게 되었다. 유독 그 매장의 직원이 친절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언제부턴가 내게 더 크게 웃어주고(내 착각일 수도 있다), 늘 마시는 메뉴를 먼저 물어봐 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텀블러를 씻어 와 줘 감사하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을 들은 종일 그 점원의 예쁜 미소가 맴돌았다. 점원과 나 사이에 스타벅스라는 벽이 있었고, 그래서 떠나기 전 겨우 단골 가게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동네를 떠나면서 아쉬운 것이 앞으로 그 스타벅스를 가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라니... 나는 실은 무척 외로운 게 아닐까?
타인에게 보여질 모습을 생각하며 매일 아침 방을 정리한다. 무척 깨끗하지만, 내 방은 아닌 것 같다. 오늘도 그 방에서 연습을 시작했지만, 연주에도 날이 서 있었다. 이런 상태로 연습을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아침 연습을 포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연습이 잘 된 날은 세상과의 조화도 잘 이뤄진다고 한다. 나는 오늘 아침 세상과의 조화가 힘들어 연습이 잘 안 됐지만, 다행히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아 있으니 연습을 통해서라도 세상과 잘 지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