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첼로와 해금 그리고 나, 셋이 모여 합주를 했다. 몇 달 전 공연을 함께 했었는데 그때 악기 구성도, 사람 구성도(나는 성격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 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 맞아 꼭 다시 해보고 싶었다.
촉박한 일정이라 며칠 전 부랴부랴 쓴 곡을 합주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단한 초견으로 합을 맞춰보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정말 망했다. 접고 집 가야겠다.'
연주자도 초견이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나 역시도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급조한 티가 났고, 엉성한 편곡이 발목을 잡았다. 암묵적으로 '시간이 없었으니 괜찮아'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시간이 없었다고 해서 내가 쓴 곡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 괴로웠다.
그 곡 말고는 별다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이 곡을 살려보기로 했다. 곡이 좋으면 연주를 못 해도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으면 곡이 안 좋아도 음악이 좋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기량에 내 곡을 묻어가기로 했다.
간절했기 때문에, 8분짜리 곡을 8마디씩 끊어가며 연습했다. 시간이 없어 악보에 악상기호도 그리지 못했다. 우리는 적은 단위로 맞추면서 음악의 다이나믹을 만들고, 최대한 표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대강 훑기만 했는데 4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보통 합주는 2시간, 길면 3시간이다. 그것도 한 번의 합주에 여러 곡을 맞추는데 한 곡만 4시간이라니.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다. 그 노고 끝에 얼추 합이 맞아가고, 곡도 제법 구색을 갖춰가고 있었다.
문제는 빠른 부분에서 생겼다. 박자가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 명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맞춰도 나아지질 않아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한 명씩 연주해보고, 둘둘 짝을 지어 해보고, 그다음엔 다 같이 박자를 맞췄다. 점차 박자가 정확해졌고, 그때 알게 되었다.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각자의 그루브가 다르다는 걸.
한 명은 클래식, 한 명은 국악, 한 명은 실용음악이라는 게 재미있었다. 빠른 부분이라 각자의 그루브가 더 도드라졌던 것이다. 처음엔 한 가지로 통일했다가, 재미가 없어 각자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서로의 그루브를 받아들이고 나니 곡이 훨씬 더 좋아졌다.
나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의 재즈 트리오 구성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트리오라는 말을 들으면 저 악기 구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해금, 피아노, 첼로는 왠지 트리오가 아닌 것 같다.
합주를 돌아보니 어제 우리는 잘 만들어진 트리오였다는 생각이 든다. 곡이 별로라는 끈끈한 결속감이 생겨 서로의 연주에 세심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연주가 내게 영향을 주고, 또 내 연주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이 사람 구성이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인 목적은 곡을 완성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과의 깊은 조화를 느꼈다. 결국 합주는 다섯시간도 더 지나서야 겨우 끝났지만, 나는 내심 합주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이제서야 음악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얼풋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