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vid Foster 공부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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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매일 1시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처음엔 가볍게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빼곡한 건물보다 나무를 보면 좋을 것 같아 며칠 전부터 동네 뒷산을 걷고 있습니다. (평지로만) 산책을 하니 생각 정리도 되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운동도 돼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걸으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요. 음악을 듣다 마음에 드는 곡은 그날 바로 카피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이런 습성을 살려(?) 대학 시절엔 MP3에 Earth, Wind & Fire(EWF)의 노래만 넣어 다녔던 기억이 나요. EWF의 곡이 공부하기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늘 뒷산을 걷는데 구글 뮤직에서 알 재로(Al Jarreau)의 Save Me가 나왔습니다. 몇 번 들어봐도 좋아 산책을 마치고, 이 곡을 카피해보기로 했습니다.
< Al Jarreau - Save Me >
산책과 어울리는 경쾌한 리듬이 좋았습니다. 요즘은 자꾸 신나는 곡에 마음이 가네요. 처음엔 펜더 로즈 소리에 집중해 들었는데, 듣다 보니 잠깐잠깐 나오는 대선율이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대선율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곡의 멜로디가 주선율이라고 할 때, 주선율과 함께 나오는 다른 선율(예를 들면 스트링 라인)을 말합니다)) 누가 피아노를 연주 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카피 시작 전에 연주자를 찾아보니,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네요. (그럼 그렇지)
여러분에겐 데이빗 포스터가 낯설 수도 있겠지만, 전공자 사이에선 모를 수 없는 전설적인 작곡가입니다. (김동률씨도 데이빗 포스터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Celline Dion & Andrea Bocelli - The Prayer >
많이 들어 보셨을 이 곡도 데이빗 포스터가 만든 곡입니다.
저는 데이빗 포스터를 과제로 먼저 알게 돼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듣기 힘들더라고요. 이 곡도 과제 곡이었는데, 진절머리나게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곡만큼은 지금 들어도 괴롭네요)
< Earth, Wind & Fire - After The Love Has Gone >
데이빗 포스터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이 곡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정말 사랑하는 곡이지만, 어린 제겐 지루하고 촌스럽기만 한 곡이었습니다. 듣기도 싫은데 카피까지 해야 하니 정말 고역이었어요. 쉽게 카피할 수 있는 곡도 아니라 머리를 쥐어 뜯으며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데이빗 포스터가 진심으로 좋아진 건 대학에 들어가고, 열린 마음으로 EWF를 다시 듣게 되면서였어요.
Al Jarreau - Save Me 카피 악보
데이빗 포스터가 이 곡의 연주자라는 걸 알게 되니, 곡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이 하나하나 이해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대선율은 편곡의 영역입니다. 물론 뛰어난 연주자는 즉흥으로도 곡의 대선을 만들어내지만, 대개는 멜로디, 또 다른 악기 연주와 다른 악기 연주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기에 편곡 과정에서 신중히 만들어져야 합니다. (악기가 많을 때는 무조건 편곡을 해야 하고요)
저는 작곡가와 편곡가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는 곡을 쓰면서 편곡 방향도 함께 고려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곡은 알 재로, 데이빗 포스터, 제이 그레이든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데이빗 포스터의 연주를 들었을 때, 작곡가기 때문에 가능한 연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좋았던 부분인데요. 1절 두 번째 벌스(Verse)와(2:17 초부터), 2절 벌스에서(3:43 초부터) 두 번 대선율이 나옵니다. 제가 그린 악보에 있는 건 2절에 나오는 대선율입니다. 특히 2절은 조성 밖의 코드가 나오는 곳에서 대선이 나와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아요. (무척 좋아하는 진행입니다)
이 곡에서 또 인상 깊었던 것은 깔끔한 브라스 편곡입니다. 브라스 편곡을 누가 했나 찾아봤더니 제리 헤이(Jerry Hey)네요. 제리 헤이는 트럼펫 연주자입니다. 역시 브라스 편곡은 관악기 연주자를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엉엉)
브라스 라인 중에서도 더 좋았던 건 별표를 친 부분인데요. (2:59초) 저 부분은 화성도 제가 안 써본 진행이라 더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맞물려 나오는 브라스 라인도 정말 좋았어요. 흠잡을 데 없는, 브라스다운 편곡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공부 거리가 많았습니다. 앞에 나왔던 베이스 리프가 브릿지에서 다시 나와 알 재로와 함께 하는 부분도 좋았고, (귀찮아서 카피는 안 했지만) 엔딩 브라스 편곡도 정말정말 좋았습니다. 낯선 화성 진행도 많았고요. (데이빗 포스터는 깨알 같은 코드 진행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신나서 저만 아는 이야기를 또 주절주절 늘어놓았네요. 이 곡을 열 번 정도 들었는데, 저도 그냥 들을 땐 몰랐다가 카피를 해본 후에야 하나하나 알게 됐어요. 기쁜 마음에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글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구나' 혹은 '아.. 하나도 모르겠지만 글쓴이는 이 곡이 좋다는 거구나', '@ab7b13이 간만에 연습 했다는 말이구나.' 정도로만 받아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동기부여가 되네요.
오늘 카피했으니 내일은 좀 세심하게 연습해보려고요. 데이빗 포스터는 작곡가인데도 피아노를 이렇게 잘 치니 정말 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