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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꽃꽂이.

하지만 꽃들을 살리기 위해 버려진 2L 플라스틱 생수통을 잘라서 꽃병을 만들었다. 어제는 출장 갔다 온 남편이 꽃다발을 2개나 받아왔다. 본디 꽃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 없는 33살 와이프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년 차가 된 작은 여자아이를 위해 저 꽃을 들고 버스 안을 왔다 갔다 했을 남편.

항상 아파트 주변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만 봐왔는데 크고 싱그러운 꽃들이 가득 묶인 꽃다발을 본 4살 여자아이의 반응이란. 폭발적이었다. 한참을 보고 또 보더니 급기야 소파에 꽃들을 나란히 진열하고 열과 성을 다해 한 송이씩 냄새를 맡아주었다. 꿀벌도 부러워하겠구나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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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뜨끈했던 방의 온도 덕분에 꽃들이 죄다 시들어있었다. 급하게 플라스틱 꽃병에 옮겨놨지만. 글쎄. 역시 꽃은 꺾는 것보다는 그대로 놔두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싱그럽고 냄새도 좋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꺾어다 장식한다는 것이 슬픈 거 같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오늘 아침에 베이컨과 계란을 먹었다. 아마도 눈앞에서 꺾이거나 죽는 순간을 보지 못한 채 포장 되어 내 앞에 덩그러니 왔으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이 모든 것들의 생산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먹기 힘들겠지.

그래도 꽃은 식물이라서 그런 걸까. 베이컨과 계란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뭔ㅡ가가 있다. 당연히 베이컨과 계란이 내게 오는 과정이 더 처절하고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식물이 눈앞에서 서서히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직접 본다는 건 느낌이 다르다. 유통기한이 지난 베이컨을 보고 슬퍼하기보다는 화가 나는 인간이 많지만, 아름다운 꽃은 시드는 과정에서 맥락 없이 슬프게 만든다. 먹을 수도 없고 실용성도 떨어지는 저 꽃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침부터 나를 자연주의 글을 쓰게 만들었다.

슬퍼질 뻔. 이런 거 저런 거 갬성 프레임을 덧입혀 봤자 나는 또 이런 일은 잊어버리고, 내 딸은 또 다른 꽃다발을 보면 좋아하겠지. 아무렴.

내가 이래서 꽃다발을 안 좋아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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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