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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 유행과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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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유행에 뒤쳐진 여자다. 아니, 뒤쳐졌다기보다는 유행에 관심이 없다. 그런 그녀는 예술가인 친구의 전시회에 갔다가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그린 그림에 빠져든다.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의 인물은 실존하는 거 같으나 '흐릿하게 그려진데다 ... 남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어' 그가 입고 있는 강렬한 원색의 푸른 코트만이 그 남자가 관객에게 전하는 유일한 단서이자 메시지였다.

푸른색 코트라. 푸른 코트를 입었던 남자를 봤던 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 두번 있다. 군대 후임 중 한명이 푸른색에 집착하곤 했다. 나보다 한참 후에 들어온 후임이라 전역 후에도 따로 연락을 주고 받을만큼 친분을 맺지는 못했지만, 가끔가다 그의 SNS에 올라오는 사진에는 그는 푸른색 옷을 자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행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취향대로 푸른색을 좋아했던 반면, 소설에서는 푸른색 코트가 유행한다.

우연인듯, 우연이 아닌 것처럼 등장하는 푸른색 코트를 입은 남자들로 여자는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친구의 남자친구로, 자신의 남편으로, 지나가는 남자로, 실제와는 다르게 착각한다. 그녀는 왜 이토록 혼란스러운 걸까?

진기의 그림 속 모델이 입었던 코트가, 식당에서 만난 젊은 남자의 코트가, 남편이 제휴카드를 이용해 할인을 받아 샀다던 코트가, 정류장에 서 있던 낯선 남자가 입고 있는 코트가 하나가 아니라 모두 다른 코트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푸른 코트가 유행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유행이 존재를 대체하는 일종의 시뮬라크르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던 걸까? 유행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그녀에게는 그래서 남편의 '이목구비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걸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가 푸른 코트를 입었다는 사실과, 그 코트가 유행이라는 사실 외에 그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하는 바가 없다. ... 마네킹은 나를 안고 있는 남자와 똑같은 푸른 코트를 입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지금은 남자들 사이에서 푸른 코트가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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