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https://steemit.com/kr-newbie/@slugnoid/world-of-c2h6o-index-of-beer)에 폭발적인 호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맥주 이야기를 갈구하는 분들이 이토록 많으실 줄은 정말 몰랐네요! 제 미천한 글이 조금이나마 즐거운 맥주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번에는 총론(總論)적인 이야기보다는, 맥주가 변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하나를 포착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숙성'(aging)의 마법입니다. 숙성은 맥주를 비롯한 주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마법과도 같은 과정입니다. 특히 맥주는 타 주류의 숙성 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 아래 사진과 같이, 나무통(Barrel)을 써서 숙성한 맥주도 여럿 출시되고 있지요. 이번 글은 바로 맥주의 숙성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 범위를 보다 좁혀, 맥주 양조에 있어서 "맥주 숙성・저장의 목적은 발효 때 남은 엑기스를 완전히 발효하고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포화시키며 효모와 기타 고형물의 침전과 맥주 맛을 순화시키는 데 있"다고 합니다. (<맥주개론>, p. 257) 보다 쉽게 말하면, 주류의 맛을 보다 순화시키고 그 특징을 가지게 하는 과정이지요.
대체 왜 숙성이 필요하냐구요?
맥주 그까이꺼 홉, 물, 맥아, 이스트 좀 집어넣고 휘휘 저으면 만들어지는 거 아니냐구요?
절대 아닙니다. 숙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모두들, 처음에는 꿈과 희망을 품고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양조를 하지만
갓 만든 맥주는 정말, 정말 맛없습니다. 바로 표정이 이렇게 변하게 됩니다.
실제로 맥주를 만들어본 분은 조금이라도 이해할 겁니다.
이걸 먹으면 카X , 클라우X는 정말 잘 만든 맥주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갓 만들어진 맥주(주류)는 여러 미생물이 뛰노는 '개판 5분전'이라고도 보시면 됩니다. 숙성은 여기에 시간(time)과 몇 가지 공정을 도구삼아, 이 맛의 무정부상태(...)에 질서정연한 상태를 부여한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양조사들은 이를 일컬어 '안정화'라는 다른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숙성과 안정화가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고유의 맛을 잡아주는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흔히 맥주 양조장에서 양조사가 "이 맥주 아직 안정화가 덜 된 건데, 먹어보시겠어요?"라고 건네는 것들은 숙성이 덜 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많이 봅니다.
이 분들의 말 어디가 잘못되었을까요?
1) 맥주는 소맥용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물론 소맥 저도 잘 먹습니다)
2)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모든 맥주는 종류에 상관없이 숙성과정을 거칩니다.
맥주의 종류에 따라 저온발효-저온숙성, 저온발효-고온숙성, 고온발효-저온 숙성의 크게 3가지 방법이 쓰입니다. 이 숙성방법은 그 유명한 상면발효(Top-fermented beer)와 하면발효(Bottom-fermented beer)라는 양조방법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흔히들, 상면발효로 대표되는 에일(Ale)맥주가 하면발효를 대표하는 라거(Lager)보다 향이 풍부하고 맛이 더 다채롭기에 라거맥주는 숙성을 덜하는 '하급'맥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역시 틀린 말입니다. 두 맥주는 엄연히 다른 스타일로서 각자의 뚜렷한 개성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 위에서 알아보았듯, 숙성은 맥주에 있어서도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양조사들은 맥주를 더욱 변태적(...)으로 만드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기상천외한 숙성방법이 등장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무통을 이용한 숙성(Barrel Aging)입니다. 영어로는 흔히 BA라고 표현되는데, 이걸 하고 안하고에 따라서 같은 맥주 값도 엄청나게 차이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크고 아름다운(...) 2병의 맥주가 있습니다. 모두 덴마크의 양조장 Mikkeller 에서 만든 것입니다. 루왁 커피(Weasel Coffee) 원두를 갈아넣는 등 호화로운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종류도 Imperial Stout로 같습니다.
차이점은 딱 하나입니다. 왼쪽 (L)은 그냥 Mikkeller Weasel Stout이고, 오른쪽(R)은 바로 Bourbon Barrel Aging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 가격 차이는 어떻냐구요?
BA를 하지 않은 왼쪽은 평균 KRW 22,000 정도이며, BA를 한 오른쪽은 무려 KRW 33,000를 넘어갑니다. 50%나 차이납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장사꾼놈들의 술책(...)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Barrel Aging을 하면 나무통에 배어있는 향이 맥주에도 조화롭게 배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쉽게 말하면 더 맛나단 거에요.
사실 숙성 방법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단순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다 더 좋은 향과 맛을 더하는 방법만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다른 주류를 담구고 있던 통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아래는 그 대표적인 몇 가지 예시입니다.
먼저, 와인통을 담구고 있던 Chardonnay . Pinot Barrel에 담궈 숙성한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그러나 쉽게 구할 수는 없....) 것이 바로 아래의 것입니다.
미국 Portland에 자리한 양조장인 Deschutes Brwery에서 양조한 Pinot Suave입니다. 맥주 라벨에 써져있듯이, French Oak 통에서 숙성시켰다고 써져 있네요.
가장 흔한 것이 위스키를 이용한 것입니다. Bourbon / Islay / Highland 등의 위스키통에 숙성시켜, 그 특유의 냄새가 배게 하는 것이지요.
역시 같은 Deschutes 양조장에서 나온 Black Butte XXVIII입니다. 라벨이 Bourbon, Scotch Barrel에서 양조했다고 씌어져 있군요!
- 사과를 증류한 술인 Calvados를 담구고 있던 Barrel에 담근 것도 있습니다. 미국 Florida에 위치한 Cycle Brewing의 Friday입니다. 실제로 먹었을 때, 사과 향이 제법 배어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까지 맥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1차) 숙성, 그리고 거기에 색다른 맛을 입히는 (2차) 숙성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본 포스팅의 목적은, 맥주도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Barrel Aging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두체스 드 부르고뉴(Douchesse De Bourgone)입니다. 공작 부인이 그려진, 와인 맥주로 유명한 벨기에 레드 에일입니다. 오크통에서 1년 반 동안 숙성하죠. 잘 익은 포도와 체리향이 와인을 연상시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난이도 치고는 정말 우수한 풍미를 보여줍니다 :)
양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여러 자료를 찾고 제 시음기에 비추어 적는 것이기에 틀린 내용이 많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적 부탁드립니다.
자료의 많은 부분은 <맥주개론>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 2016)에서 참고했습니다. 맥주 전반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굉장히 좋은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