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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의 장면, 영화 속 명장면 철학 읽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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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씬 :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

  • 감독 : 구스 반 산트
  • #장면 :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윌과 처키
  • 주제 : 진정한 친구에 대하여

앞서 소개된 적이 있는(명장면 철학 읽기 14편 참고) <굿 윌 헌팅>은,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마음 속 상처로 인해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는 윌이 마음의 문을 열고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다.

윌은 숀 교수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심리치료를 시작하긴 했지만, 온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연인이었던 스카일라에게도 깊은 상처를 안기며 헤어지고, 처음 그의 재능을 알아준 램보 교수와도 다시 마찰을 일으킨다.

도저히 마음의 상처를 다스릴 길 없어 보이는 윌. 그는 여전히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며 재능을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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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는 어때?”

“떠났어”


윌이 연인인 스카일라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처키는, 윌에게 여자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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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다고? 어디로?”

“캘리포니아 의대로 떠났어”


스카일라는 명문대를 다니며 재산도 많다. 처음 윌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스카일라와 교제했지만, 끝내 자신의 처지를 들키자 먼저 스카일라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버려질 게 두려워 먼저 버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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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그거 엿 같네”


처키의 어조엔 어떤 자괴감 같은 것이 엿보인다. 마치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느낌처럼. 그럼에도 자신은 안 되겠지만 혹시나 통념에서 벗어난 어떤 멋진 일이, 그의 뛰어난 친구에겐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무너진 듯도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저앉게 만드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저 담담히 체념해야하는, 그 과정에 익숙해져버린 모습들이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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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하고 만나는 건? (중략) 일거리 같은 거 알아봐 준대?”

“그래, 앞으로 50년 동안 책상머리에 붙어 있으래”


기분이 더 묘해지기 전에 처키는 재빨리 화두를 윌의 취업 문제로 돌린다.

딱히 화제가 없기 때문에 그저 일자리에 관해 얘기를 꺼내는 것 같지만, 처키를 비롯한 윌의 친구들은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이는 앞서 보여준 윌의 경우(적어도 처키의 시선에서)처럼, 물질적 가치 때문에 최소한의 행복도 사치가 돼버리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한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은 행복하기 이전에 그를 실현케 해줄 어떤 현실의 장벽, 물질적 가치에 대해 갈망함과 동시에 좌절하고 있으며, 때문에 이를 해결해줄 취업과 같은 문제를 항상 우선시 한다. 이 같은 모습은 영화 속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청년들이 다 같이 겪는 고뇌 같다.

어쨌든 물질적 가치나마 쥐길 바라는 처키의 기대와는 달리, 윌은 램보 교수가 제공하는 면접 기회를 몽땅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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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많이 벌겠다”

“빌어먹을 실험실 생쥐 꼴이 되는 거지”


윌의 성격을 잘 아는 처키는 직접 관여는 하지 않고 짐짓 윌이 보다 나은 환경에 취업했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치지만, 윌의 생각은 완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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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기서 탈출할 순 있잖아”

“난....... 평생 여기서 보낼 작정이야. 너랑 이웃에 살면서 애도 낳고 리틀 야구장에도 함께 가고 말이지”


잔잔히 윌을 설득해보려던 처키는 마침내 윌의 ‘평생 여기서 주저앉겠다’는 말을 듣고 태도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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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넌 내 제일 친한 친구니까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 20년 후에도 노동자로 여기 살면서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때리고 있으면 널 죽여버릴 거야. 진짜로.”


처키는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며 살겠다는 윌의 의지를 단박에 박살내버린다. 그것도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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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대체 무슨 소리야?"


평소완 달리 느닷없이 폭탄 발언을 쏟아낸 처키를 보고 윌은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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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을 가졌잖아”

“제기랄! 다들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난 이 일이 좋다고!”


처키는 윌이 더 나은 환경, 더 고차원적인 것에 몰두해야 하는 간결하지만 절대적인 이유를 꺼낸다. 타인은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재능, 게다가 그 재능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면, 이를 방치하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다. 어쩌면 억만장자가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더욱.

하지만 윌의 반박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물론 윌에게 이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윌의 발언은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까워 보이니까(어쨌든 윌은 수학문제를 풀거나 어떤 문제를 논증하는데 흥미를 느끼니까).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소한 일을 영위하는 것에 대해선 한번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부쩍 인터넷 상에서 늘어난 ‘대기업을 그만둔~’, ‘좋은 직장을 그만둔~’ 으로 시작하는 글들처럼, 좋은 재능을 살려 좋은 직장을 얻었지만 개인의 행복과 거리가 멀어 관두었다는 사례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자아의 주체성을 이끄는 ‘자유의지’의 문제로서, 어떤 경우라도 이 자유의지가 무시되어선 안 된다. 비윤리적인 상황을 야기하지 않는 한, 개인이 선택하고자 하는 길을 억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가치들은 언제나 최악의 역사를 낳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주인공 윌은 자유의지의 문제로 재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어기제 때문에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으므로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선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살짝 살펴본 것으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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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이 빌어먹을 자식! 널 위해서 그러는 게 아냐. 날 위해서라고. 난 50살이 돼도 육체노동을 하고 있을 거야.”


어쨌거나 자유의지의 문제가 결부되어있든, 윌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든 처키는 절친한 친구가 아까운 재능을 하릴없이 묵혀두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한 교제, 탁월한 교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친애’ 부분에 언급되어있듯, ‘어떤 이익관계에 상관없이 상대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어떤 이익을 취할 생각으로 상대의 건승을 기원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을 뿐더러, 이익이 없거나 해가 되어도 자신에게 고통이 따르지도 않는다. 애초에 이익이 없으면 떠나버리니까.

그러나 진정한 교제라면 친구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이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고통스럽다. 마찬가지로 설령 친구가 성공해 내게 이익을 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기쁠 것이다. 그러니 ‘네가 잘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란 처키의 말은 이익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친구의 실패가 자신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상태에 이른, 진정한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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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넌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 너무 겁이 많아 돈으로 바꾸지도 못하는 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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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같은 짓이지. 네가 가진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거야. 그건 여기 있는 친구들도 똑같아. 네가 여기서 20년씩이나 시간낭비하며 썩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처키는 친구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윌에게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재능을 묻어버리는 것은 과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힘 빠지는 소리다. 앞서 윌이 스카일라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처키의 반응처럼, 개개인의 됨됨이나 어떤 가치와는 상관없이 현실에 벽에 부딪혀 도태되는 일들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재량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자신의 안 좋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동안의 멸시와 어떤 차별들을 이겨낼 수 있다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겐 희망이 된다.

막노동을 하며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수기,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고시를 통과했다거나, 혹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큰 명성을 얻거나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깊은 감명을 준다.

그러나 그런 뚜렷한 능력과 가능성이 있음에도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고 포기해버린다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어차피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좋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 부와 명예를 누리면 안 되는 것인가? 그래, 나조차도 이런걸, 너희는 더더욱. 윌이 자신의 재능을 버리는 모습은 과연 처키에겐 모욕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윌이 진실로 친구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오히려 재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친구들을 구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확실히 소중한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 보다는 즐거운 상황을 나누는 것이 더 행복하니까. 윌이 자신의 재능을 묻어버린다는 것은 처키의 말대로 억만금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독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진실로 친구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같이 진흙밭에 함께 구르기보단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넘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막대한 부와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그가 가진 몫의 극히 조금만 나누어도 그의 소중한 친구들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또 그를 바탕으로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회를 새로이 얻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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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소리 하지 마”

“뭘 몰라?”

“넌 몰라”


물론 윌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 친구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이 되고, 또 그렇게 되어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상처는 이를 주저하게 만든다.

수많은 적을 사살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전쟁 영웅을 그 재능만 보고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면, 그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닐뿐더러 선뜻 응할 사람도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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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내가 모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거 한 가지는 알아.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널 깨우고 같이 외출해서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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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문을 한참 당기고 두드려도 네가 거기 없는 거야. 안녕이든 뭐든 작별인사도 없이 말이야. 네가 떠났을 때라고”


처키는 윌이 얼마나 큰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알고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윌이 가진 그 상처가 어떻든 간에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윌이 성공을 통해 상처입고 고통 받은 세월을 보상받길 원한다.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사귀는 관계는 앞서 말했듯이 휘발성이 짙다. 그런 인연은 ‘즐거움’이 소진되면 언제든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된 교제는 즐거움도 함께하지만 무엇보다 ‘친구의 좋음’ 그 자체에 열광하는 것이다. 처키는 진심으로 윌의 행복을 기원하고, 잠깐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보다 윌이 행복해지는 것이 친구로서 더 커다란 기쁨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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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거야”


하지만 윌의 행복을 비는 처키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비록 친구가 자신의 재능을 살려 행복을 되찾는다고 해도, 자신과는 다른 인생길을 걷게 될 테니까. 어쩌면 그로 인해서 영원히 이별하게 될지 모르는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까.

학년이 끝나고, 학기가 끝나고, 취업하면 연락하기로 했던 친구들이 인생의 굴레 속에서 하나, 하나 전등 꺼지듯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친구들 모두 떠난 캄캄한 밤하늘 속에서 문득 별처럼 빛나는 그리움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허나 그럼에도 진정한 친구라면 어떤 이익이나 해악을 바라거나 피하지 않는다. 그의 행복을 기원하고, 그가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돕고 응원할 것이다. 관중이 비천할 때 지지를 아끼지 않고 대업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준 포숙아와, 또 그런 포숙아를 잊지 않고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라며 존경한 관중처럼.

그러니 결국 나를 알아봐주고 내 행복을 빌며 내 가치를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참된 벗이 아닐까. 또한 나 자신도 진정한 벗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논어』에서 언급됐던 것처럼, 언제나 ‘그 사람을 못 알아볼까 두려워’해야하지 않을까.


*본 리뷰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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