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 이미지 - 회상

이미지 - 회상
지각 - 이미지

들뢰즈의 프루스트 작품해석에서 이미지-회상, 지각-이미지에 영감을 받아 이 글을 쓴다.

과학의 시대 이후 시간의 개념은 직선적이다. 이런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경유한다.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도 있으나, 이는 기록과 재현의 범주에 있다. 인간이 인식하는 과거는 지각에 의한 시간의 인식이다. 현상학에서 지각은 어떤 사건의 사실관계의 시간 개념을 따른다. 시간은 단순한 지표보다는 어떤 공간처럼 작용한다. 그래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어떤 현상의 연속적인 망각이자, 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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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 이미지 - 회상

시간의 연속에 따른 개념보다 기억의 순간에 지각-이미지가 되고, 각인된 기억이 나타날 때 이미지-회상으로 전환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변수라기보다, 하나의 상수이다. 사건을 기억함은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다. 수많은 내가 그 장소에 머물 때 사건이 나를 지나간다. 이 흐름에서 특정한 사건은 이미지로 남아 ‘현재의 나에게 불현듯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가 회상을 사실로 체험하게 해준다. 기억은 이미지의 연속체이고, 지각은 이를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단지 존재들을 변화시키고 존재했던 것들을 없애버리는, 지나가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일하거나 예술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자기의 시간을 낭비하고 사교생활에 탐닉하며 사랑을 하게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되찾은 시간은 우선,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가 되찾는 시간이며, 또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영원성의 이미지를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절대적인 근원적 시간, 예술 속에서 확인되는 참된 영원성이기도 하다.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시는 꿈과 예술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무의식의 개념과 연관 짓는 중요한 개설서이다. 우리가 꿈을 꿀때 꿈의 시간은 연속된 흐름이라기보다 임사체험의 한 형태이다. 어떤 위험한 의식이 정지하는 순간,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나 의식할 수 있는 꿈을 기억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의식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험은 실증주의와 연결된다. 현실에서 경험을 갈무리하여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귀납적 방법이다. 꿈을 꿈속의 현실로 놓을 수 있을지, 꿈을 경험의 무의식 과정인지 따져야 한다. 일반적 사실에서 꿈은 비현실의 비-경험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 꿈은 무의식의 범주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은유와 환유가 됐다. 잠재된 지각이 또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의식과 다른 우리 정신의 작동 양식으로, 의식과 떨어진 곳에 우리 과거의 어떤 삽화를 보존한다. 그 과거를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그 과거는 떠나지 않으며, 환영처럼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형태로 언제라도 모습을 드러난다. 라캉은 언어작용을 무의식과 연결하여 응축을 은유로 치환을 환유라고 재 명명했다. 은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연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한 단어에서 다른 단어로 대치한다. 환유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인접성에 근거하여 연속적으로 연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서 표상될 때 주체가 끊임없이 어떤 단어로 대치되는 반복의 은유와 주체의 연상 작용으로 언어가 이어지는 환유가 변신 이야기에서 인간의 변형과 변질의 메타로 매개한다.

꿈의 메커니즘은 지각이 이미지화하여 보존되고, 불특정한 상태에서 이미지가 환영처럼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회상이다. 여기서 시간은 불연속적인 혼돈(카오스)의 상태에 있다. 이제 주체는 혼돈의 요소를 가미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성과는 바로 존재론에서 혼돈의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런 혼돈의 상태가 무위일지, 절대적 자유일지는 근대의 자유 개념으로부터 비판적 돌출을 해야 하니 생략하겠다.

예술의 구성원은 예술을 창조하는 예술가와 예술을 인식하는 관람객으로 나눌 수 있다. 예술을 인식이라고 한다면 철학은 예술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예술을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예술은 지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총체적 행위이다. 어떤 특정 집단으로부터 정해진 방법이 있기보다는 모든 삶과 연관이 있다. 진리의 방법에서 지각-이미지를 동일성이라고 하면, 이미지-회상은 다시 예술을 진리로 환기한다. 곧 세계의 지각을 예술가의 이미지-상상을 매개로 한 행위의 결과물이다. 지각-이미지-회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실체를 뛰어넘는, 곧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탈존, 존재의 행위이다. 이미지 과잉의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꿈과 예술은 상품의 스펙터클을 초월하여 이미지를 환기하는 궁극적 진리의 방법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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