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 묵직한 감동과 진중한 역사의 기록

이번 설연휴에 집에서 1987을 봤습니다.
사실 크게 기대 안하고 봤는데 끝나고
가슴이 참 먹먹해졌습니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독재정치에 치가 떨리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역사에 무지하면 그만큼 국민이
모두 그 값을 치루는 것 같습니다.

1987은 1987년 1월 14일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아야했던 것인지
그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사망으로 권력에 공백이 생기자
당시 군인이었던 전두환, 노태우는 12.12 군사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미 박정희 독재정권을 겪었던 국민들은
더이상의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민주화운동을 벌입니다.
이에 전두환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력을 이용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로 무력진압했습니다.
그 후 선거대리인단을 통한 간선제(간접선거)로
제 12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됩니다.
무력진압, 독재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심해지고,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민주화운동이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1987년 1월 14일에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재학생인 박종철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사망이유를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단순쇼크사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재야인사나, 데모를 하는 학생들에게 고문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박종철군의 시신을 부검했던 의사인
오연상씨를 통하여 물고문에 의한 사망의심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대학생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전두환은 4.13 호헌선언을 합니다.
대통령직선제를 기대하던 국민들의 바램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경찰들은 박종철사건을 조용히 무마하기 위해
몇몇 경찰들을 징계하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구치소 보안계장이었던
'안유'라는 사람이 구치소 내에 있던 재야인사에게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게 됩니다.
안유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정의 구현사제단'에게
전해지고, 명동성당의 5.18 기념 미사에서
그 진실이 폭로됩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광분한 대학생들이
연세대 앞에서 대정부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 재학생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이한열 최루탄 사망사건까지
더해지면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한열이를 살려내라!" 하며
시위가 확대되었고, 전두환을 포함한 여권인사들은
차기 대통령으로 노태우를 선언하였습니다.
시위가 통제할 수 없이 커지자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선언하는
6.29 개헌선언을 발표하며 전두환은 물러나게 됩니다.

이한열 열사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고,
1987년 7월 9일에 이뤄진 영결식을 끝으로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은 끝이 납니다.

캡처.PNG

영화 1987은 1987년에 일어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을 덤덤히 풀어냈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입니다.
감정적 호소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눈물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랑스럽고,
노무현전대통령과 문재인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역사 출처 : https://blog.naver.com/toughsave42/22117816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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