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릇듣기] 시간이 흐른 뒤면

저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편입니다. 싫으면 좋은 척 못하고, 불편하면 편안 척 못하고.. 그런 성격이 표정에도 다 드러납니다. 사회생활 레벨을 표정관리 잘하는 순으로 매긴다면 저는 아마 100중에 5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솔직해서 좋다고 합니다. "보여지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너인 것 같아서 믿음이 간다"고 말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며, 기분 좋은 칭찬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그 솔직한 모습이 선을 긋는 것 같다". 계속 얼굴 볼 사이에, 넘어갈 건 좀 넘어가라고.. 굳이 표현 안 해도 되는 감정들이 표정에 튀어나와버려서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A가 있습니다. '한때'라는 말이 붙었듯, 지금은 멀어졌습니다. 표정에 드러나는 저의 솔직함 때문에요. 저도 모르게 A에게 기대했고, 알아가며 실망했습니다. 가식과 위선 그리고 자주하는 거짓말, 거짓 약속.. 그런 것들이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그래도 A의 안 좋은 모습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거나 하는 이간질 같은 짓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A를 겪어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멀어지기 전 A가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저는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감정에 휘둘려 앞을 보지 못하는 A가 자신이 만든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울고 있는 A가 안쓰러웠고 더 좋은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에 조심스레 조언했습니다. 그때 A는 저에게 상처받은 거 같습니다. 조언 속에 있는 저의 진심이 A에겐 그저 포장지 없는 아픈 말이었나 봅니다.

실망이 거듭되면서 내 감정선에서 A는 점점 빠져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A의 인생에 주제넘은 참견을 했다는 생각도 들고, 괜한 감정낭비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상처 받았다던 A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약 한 달 전 A와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서로 오해했던 부분들이 있어 아주 조금 해명했고, 친했을 당시 좋아했던 건 진심이었다고 말하고, 상처를 줬었다면 미안하다고. 서로 그런 얘기를 조금 주고 받다가 끝이 났었네요.

그러고 어제 밤에 갑자기 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것 같았는데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하더라구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취중진담인지, 뭔지.. A에게 했던 실망들이 아직은 저를 불신으로 밀어넣습니다. 만약 A가 진심이었다면 저는 또 미안하게 되겠네요.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성급하게 해결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지내다보면 진심이었는지, 또 거짓이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사실은 싱숭생숭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라도 정리해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오늘의 미릇듣기가 너무 진지해져 버렸네요.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버려서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라고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 억지로 끼워맞추려고도 않을 거고 애써 외면해버리지도 않을 겁니다. 적당한 노력 정도만 내가 준비하고, 남은 건 시간에게 맡겨볼 생각입니다 ㅎㅎ

[미릇듣기] T - 시간이 흐른 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26 Comments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