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암호화폐가 가져올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Cryptodreamers 입니다.
오늘은 암호경제학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회적 질서와 그 구조에 대한 고전적 관점을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암호화폐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 요즘, 다소 엉뚱한 비유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네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암호화폐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놀이는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룰을 친구에게 선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린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관찰한다면 재미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A란 어린아이가 B라는 또래 친구에게 "나는 빨간색 장난감을 갖고 놀아야만해" 라고 이야기하고, B는 이에 대해서 "그렇다면 나는 파란색 장난감만 가지고 놀거야. 이 파란색 장난감은 네가 가진 빨간색 장난감보다 더 힘이 세".
그들은 새롭게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내며, 하나 둘 쌓여가는 복잡한 룰 속에서 나름대로 순응하며 재미있는 놀이를 이어갑니다. 암호화폐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대해 고민을 해본다면, 이처럼 어린 아이들이 룰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그 룰에 맞는 놀이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경제학, 수학적 고민이 필요하겠죠. 수 없이 많은 변수들에 대해 고민하고 어떠한 인센티브 제도와 페널티 제도를 통해서 완벽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수 없이 많은 도전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복잡한 사회적 질서와 경제적, 사회적 제도가 갖춰진 일련의 과정을 고려해 본다면, 오랜 기간동안 수 없이 많은 사회공학자들이 고민하며 올바른 길에 찾아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암호 경제학자들은 암호화폐로 운영되는 생태계를 구축함에 있어 많은 부분들을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코인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치를 주고 받을 수있는 하나의 완결성을 갖는 생태계를 구축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본질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룰을 스스로 창조해내듯이 창조적이며, 지극히 사람에 의한 가치관이 반영되며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류가 오랜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온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짧은 순간에 암호화폐 생태계에 모두 담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고민을 토대로 암호경제학에서 고려해야할 사회적 질서에 대한 사상가들의 아이디어를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의 내용은 글 하단부의 Note에서 원문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인간이 만들어낸 조직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가장 연관이 깊습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언어를 만들고, 회사를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발생할까요? 사회적인 질서는 왜 존재하는 것 일까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라 조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동시에 개별적인 주체로서 조직과 별개로 목표와 욕망을 가집니다.
사회적 질서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컨셉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개인과 조직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은 조직에 기여하지 못 할 수도 있고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역으로 조직에 대한 충실한 역할 때문에 개인이 큰 비용을 치루게 하는 경우도 있죠.
벌, 말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사회적 질서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타적으로 조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들이 갖는 유전적 동족의식은 큰 군집체가 문제없이 운영되고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협력은 결코 유연하지 않고 엄격한 룰에 의해서 통제됩니다.
'여왕벌'에서 조직의 모든 생명체가 탄생하는 벌, 개미와 같은 곤충을 제외하고 다른 동물들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유전적 동족의식을 갖습니다. 근본적으로 개별적으로 다른 동물이고, 군집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늑대 무리와 같이 강제적인 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경우 매우 유연하고 유전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사회의 성격이 매우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회에서많은 사람들이 협동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조직과 예측가능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왜 사회는 이러한 것이 가능도록 만들었을까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들이 협동하는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이러한 질서에 대한 이론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만들어진 질서(Made Orders)" 이거나 "자연발생적질서(Spontaneous Orders)"이거나 둘 중 하나란 주장이죠.
이러한 개념을 증명하는 확실한 예시는 회사같은 조직입니다. 사회적 질서는 이러한 조직으로부터 사회로 확장됩니다. 사회적 질서는 중앙정부나 중세의 교회같은 신앙조직에서 발생하고 사회에 강요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원천에 대해서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스러운 권위(Devine Right)"의 이론입니다.
종교적 믿음은 정치적으로 고귀하고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신의 의지를 받들어 성스런 권한을 가진 세습적 군주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근간을 제공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 계약(Social Contract)" 이론입니다.
즉, 사회적 질서란 이성적인 사고와 계획, 자발적인 개인들의 의사 결정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의 개념이 이에 해당합니다.
시장, 언어, 법, 화폐와 같은 것들은 특정한 조직의 의도된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될 수 없는 예시입니다. 시민 사회는 자발적인 조합과 조직들의 복잡한 상호교류의 네트워크가 구성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시민 사회 그것 자체는 조직이 아니죠. 누군가가 거창한 목표를 갖고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닙니다.
즉, 자연발생적 사회적 질서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이라는 점에서 "만들어진 질서(Made Orders)"의 이론과는 큰 차이를 가집니다.
이러한 경우에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 이전의 삶은 어땠나요?", "어떻게 정부가 처음에 생겨 났나요?", "국가상태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질문들은 어떤 정부가 세워져야 하는지, 혹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성적으로 전제한 가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전제한 가정입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위와 같이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질서를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어느정도 자유를 포기하고 국가 조직에 종속됨으로써 끊임없는 권력투쟁을 할 필요가 사라집니다. 사회적 질서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단 한가지의 방법은 모든 사람에 대한 합법적이고 영속적인 권력의 존재를 인지시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홉스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그의 사회적 관점은 독재적 권력에 대해서 최초로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정당성을 제공했습니다. 과거에 이러한 방식의 정부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권위에 의존했습니다. 홉스는 절대주의군주를 통해 권위있는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독재군주의 정당성을 제공했죠.
하지만 사회적 질서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연상태의 이성적인 이기주의자들이 왜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며 강압적인 권력에 굴복해야할까요? 만약 사람들이 사회적 차원에 대한 목적으로 스스로를 절대권력에 굴복한 것 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이성적인 이기주의자들은 개인적인 문제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회적 질서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 했을까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동기부여받지 않는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절대적 권력은 적절한 통제를 위해서 사회적 질서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만 강제적 통제라는 것은 큰 비용을 수반하며, 도덕적으로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해 낼 수 없었습니다.
약 40년 후,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는 사고실험을 그대로 활용하여, 존 로크는 다른 결론을 도출해내기에 이릅니다. 로크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평화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투쟁을 해결해야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질서인 입헌군주, 헌법에 근거한 정부 등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신에 의해 창조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자연권을 갖고 있으며,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다닐 수 있으며, 타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재산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자연상태에는 사람들의 악한 행동을 유발하는 "나쁜 사과"들이 있습니다. 번영을 위해서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하고, 헌법적 사회적 룰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수용될 수 있어야합니다.
로크는 홉스와 비슷하게, 사람들은 사회적 계약에 속해야하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안전보장과 사유재산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정부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로크가 생각한 국가상태는 홉스의 관점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 기능이 특별히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한정되어야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미 존재하던 자연상태를 지지해야하며, 신에게 의해 부여된 권리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새로운 권력이나 정부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고맙게도, 로크는 1819년 독립선언에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홉스는 그렇지 못 했지만요.
그는 인간에 의한 시스템을 자연적인 조화, 자연발생적 질서 등의 개념과 구분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을 큰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활용되는 체스의 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국가라는 것은 "사람의 시스템"으로 가득찬 것이며, 사회는 오로지 개인들이 서로 협력할 때 잘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인들은 체스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개인이라는 체스의 말들이 사람이 만든 시스템 계획과 잘 맞아 떨어진다면, 사회는 보다 더 잘 운영되며 그들이 만약 다른 목적으로 행동을 한다면 체스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날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모두 경제적 유인에 대해 고려했습니다. 그는 근대 이론들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질서는 정부에 우선한다고 이야기하며, 만약 정부가 없어진다고 해도 질서는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미스는 사회의 질서는 "사회의 원칙과 사람들의 구성"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766년 그의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발행을 통해서 자연발생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적 질서에 대한 생각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는 시장의 움직임에 매우 주목을 했죠. 시장에서 사람들이 거래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발생적이고, 통제받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고귀한 계획이나 목적이 개입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이 메커니즘을 그의 유명한 비유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경제적 주체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그들은 그들의 의도에 의해 속하려고 한 것도 아니지만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진다.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질서에 대한 이 아이디어는 아담 스미스가 현대사회에 공헌한 큰 기여었으며, 애덤 스미스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연발생적이고 통제받지 않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 스미스에 의해서 크게 진전되었고, 그는 새로운 이론들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특정한 예상으로부터 다르게 행동할 때, 사회적 질서의 존재에 대해 이론화했습니다. 그는 가격의 변화가 어떻게 개인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조정하는데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했고, 이는 경제학의 큰 성취였습니다. 결국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이예크는 정부에 의해 시장의 가격이 통제받는 것에 대해서 크게 반대했고, 시장가격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질과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들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중앙집권적 조직의 경제 통제는 자유 시장의 효율성과 결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경제 주체들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진 정보들에 비하여 고려해볼 때, 작은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통제받지 않은 경제 시스템은 사회의 각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 분산된 정보를 더욱 분산시키고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지미 웨일즈(Jimmy Wales)는 위키 피디아 프로젝트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이예크의 책이 가장 자신의 생각에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인용했습니다. 하이예크는 모든 정보가 분산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식들은 정보격차를 갖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에게 불균등하게 존재합니다. 그 결과 중앙집권적인 주체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재권력의 정당화를 이성적으로 설명한 홉스부터 탈중앙화된 정보로 인한 정보격차를 이야기한 하이예크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사회적 질서를 구성할 때, 멀지 않은 과거에는 가장 간단한 정답은 독재권력 혹은 군주제, 카스트 제도, 봉건주의 같은 시스템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보다 효율적인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고려해야할 복잡성은 크게 늘어갈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구조의 본질을 이해하기는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볼 때, 비트코인이 성취한 것들은 정말 놀라운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협조와 협동을 통해서 그 어떤 권력의 통제도 받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질서는 자유 의지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은 아니며,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가장 효율적인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암호화폐를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경제적 구조화를 포함하여 하나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질문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스팀잇 같은 플랫폼 서비스를 구상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에는 반드시 제2의 스팀잇이 나올 것이며 또 전 세계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플랫폼의 출현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암호화폐 경제학에 대해 좀 더 심도있는 공부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ㅜㅜ 갈 길이 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