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왕방산 찾아 시린 마음을 데우다

포천의 진산, 왕방산(王方山)은 소잔등을 닮아 펑퍼짐한 모양새입니다. 서울에서 철원과 김화로 이어지는 포천 인근 43번 도로 왼편에 우뚝 솟아 있지요. 한북정맥의 지맥인 천보산맥의 여러 봉우리 중 한 봉우리입니다. 축석고개 부근 한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천보산맥은 포천방향으로 회암령을 거쳐 해룡산(661m), 왕방산(737m), 국사봉(754m), 소요산(532m), 종현산(589m)까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빚어놓고서 한탄강과 합류하는 영평천에 머리를 박습니다.

왕방산에는 이성계와 이색의 숨결이 깃들어 있단 사실도 알았습니다. 조선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왕자들의 골육상쟁 소식을 듣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산을 찾아 수일간 체류했다 하여 산 이름이 王方山으로 불려지고 있다는 설이 있지요. 또한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세속을 떠나 이 산으로 들어와 암자를 짓고 은신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끄물끄물한 지난 일요일(12월 29일) 포천 왕방산을 다녀왔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아 직접 핸들을 잡았습니다. 집을 나와 내부순환로>북부간선로>구리 포천간고속도로>포천 왕방산 들머리 무럭고개까지, 68km를 1시간 10분 달려 고갯마루 쉼터에 차를 세워두고 나홀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정상까지는 4.8km(왕복 9.6km) 걷기 편한 육산입니다. (흙으로 이루어진 산은, 인체의 근육에 비유해 '肉山', 암릉 산은 인체의 뼈에 비유해 '骨山'으로 표현들 하지요^^)

인적 드문 산이라 정상에 이르는 동안 맞닥뜨린 산객은 딱 여덟명이 전부였습니다. 바닥에 깔린 바삭바삭한 낙엽은 양탄자처럼 푹신해 걷기 좋지만 행여 불이라도 붙으면 휘발유와도 같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숲길을 두 시간 남짓 걸어오르자, 앞이 탁 트이면서 팔각정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팔각정자를 끼고 돌아 100여 미터를 걸음하면 왕방산 정상(737m)입니다. 정상 사방은 간유리를 통해 본 풍경처럼 희뿌옇습니다. 미세먼지인지, 박무인지, 지근거리의 국사봉만 겨우 분간이 될 뿐입니다.

뜨거운 물과 봉지라면 뽀글이를 배낭에 넣어 왔지만 산중식의 재미를 포기하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조금 전 들머리 쉼터에서 차 세울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때마침 쉼터 주인장이 밖으로 나오더니 친절하게도 "쉼터 주차장라인 안에 세워두고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퍼뜩 그 주인장의 친절이 떠올라 쉼터에서 점심을 해결해야겠다 맘 먹었죠.
하산하여 쉼터 안으로 들어서니 남 주인장 모습은 보이질 않고 주방에 아주머니 혼자입니다. 밝은 표정으로 맞아 주었습니다. 부부라고 하더군요. 역시 부창부수인가 봅니다. 부부의 마음 씀씀이 만큼이나 연탄난로도 따뜻하고 정겨웠습니다.

"라면 하나 끓여 주세요"하고선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이길래 땀에 젖은 방한모와 장갑, 재킷을 벗어 난로 옆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습니다.
곧이어 원목 식탁에 라면과 함께 넉넉하게 담은 김치와 따끈한 공기밥이 올라왔습니다. 맛나게 싹싹 비웠죠.
5천원을 드리자, 거스름 돈 2천원을 주셨지만 기어코 받지 않았습니다. 차를 세울 수 있게 배려해 주시고 따뜻한 공기밥을 덤으로 주신 고마움에 비하면 라면 하나 시킨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5천원으로 이렇게 맛나게 먹어본 적,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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