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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4편

어린시절 나의 전공은 S/W 였다. 대학교때는 H/W 였으며, 대학원때는 communication 및 radar였고, 창업을 시작 하면서는 경영학이 되었으며, 창업 후에는 기획을, UX를, 그리고 현재는 product design을 맡고 있다.

이글은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의 속편으로 이전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확인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1편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2편
그래서,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 3편



전공3. 통신/레이더 (계속)


대학원 졸업을 6개월 정도 남겨 놓은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 직장을 다니던 그녀는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다며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된다. 여느 연인들 처럼 서로 부여잡고 눈물을 질질 짜지는 않았다. 애써 서로 차분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후 난 깨달았다. 그것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음을.

오래된 연인의 이야기는 흡사 노래 가사에 등장 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욱이 6개월 넘게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간의 추억도 그대로 멈춰버렸었지.

사실 그것은 핑계였다. 오래도록 함께 보낸 시간들 만큼이나 서로를 잘 안다는 안락한 핑계. 그렇게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을, 당신과 연락하는 시간을, 당신만 생각하는 시간을, 단지 과거라는 변하지 않는 서로의 6개월전 사진첩 어딘가에 그대로 담아 두려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챙기는 기념일이 줄어드는 만큼 서로의 기록들이 멈춰가는 모습들을 보며 추억은 예전 보다 느리게 쌓여가고, 시간은 예전 보다 빠르게 지나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도, 당신도, 우리의 추억도 모두 나이를 먹어갔다.



마침내,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가 벌어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 12시간이 넘는 시차의 호주땅 그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에 나를 매우 당혹스러웠다. 당시의 감정을 글로 설명하는것은 매우 어렵다. 글을 쓰려면 감정들을 하나씩 분리해 서술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며 난해한데다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분리해 낼 수 없다. 단순히 ‘슬펐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 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도 없다. 모르겠다. 훗날 내 글쓰기 솜씨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진다면 조금은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겠냐만은, 지금으로써는 그렇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갔다. 당시 대학원 졸업 논문 심사를 일주일 남짓 남겨 놓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논문 역시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굳이 이런 시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제부터가 내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생각이 정리된 나는 교수님을 찾아갔고 당장 호주로 가야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졸업논문 심사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슨말이냐며 팔짝 뛰셨다. 물론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나는 교수님을 설득해야만 했다. 떨리지만 당당한 어조로 말했던 것 같다.

“제가 호주를 다녀온다고 해도 그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졸업 논문 심사를 마치고 간다고 해도 그 결과가 같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속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가는 논문 조차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사실 이미 제 마음속에서는 비행기를 타겠다고 정했고 이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교수님 몰래 그냥 떠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면 저는 그녀와 교수님 둘 다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이야기는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급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가지 않는게 최선이라고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수 없는 상황이 일주일 이내에 안정되지 않는한 그것은 최선이 아닌 최악의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논문은 다녀와서 날을 새서라도 마무리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윽고 말문을 여셨다.

“음… 그럼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하도록 해. 그 친구를 위해 가는게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가는거야. 지금 마음이 매우 복잡한 것 같으니 가서 SG자신을 정리하고 오도록 해. 비행기표는 끊었어?”

“이제 부터 찾아봐야죠.”

“잠시만 기다려봐.”

교수님은 평소 해외 출장시 자주 이용하시던 여행사에 전화를 거셨고, 호주행 티켓 한장을 부탁하셨다. 여행사 담당 직원의 언제냐는 물음에 ‘최대한 빠른걸로’라는 짧은 말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12시간 후 탑승가능한 티켓을 예약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빨리는 티켓을 못 끊는다고 한다. 그동안 여행사와 교수님이 쌓아온 관계 덕분에 사실은 억지로 한장 끊어 준 것일터.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이기에 당시의 대화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 기억의 미화속에 MSG 조미료가 잔뜩 뿌려진 소설의 한 장면 같은 대화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만은…. 아니다. 맞는 것 같다. 눈물이 살짝 나긴 했었지만 나는 내 결정 앞에서 당당 했었고 교수님은 애써 담담 했었다.



그렇게 나는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서, 지구본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호주의 어느 도시를 향해 12시간만에 비행기에 올랐다. 챙긴 짐이라고는 그녀의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 한장과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우리는 한번은 봐야하는 헤어짐 이라는 만남을 위해 낮선땅 호주에서 다시 만났다. 오래된 사랑이라는 낡은 스폰지에 가끔은 서로 몰래 적셨을 눈물을 밀어내며 그것들을 한껏 토해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은 3일. 나는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또 다른 감정들과 함께 ‘이별 여행' 이라는 우리와 나 자신을 정리하는 일정을 소화했고 그러고 나서야 함께 타고 가던 사랑이라는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가 다시 내 앞에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사람과 그 버스에 오른다. 행여 혼자 오른다고 해도 나는 당신 옆이 아닌 다른 자리에 앉는다. 내가 아는 당신은 이제 이세상에 없다. 이제는 우리가 아닌 ‘너’ 그리고 ‘나'의 서로 다른 시간의 축적만이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애틋한 첫사랑과 함께, 우리의 사랑이란 마음은 서로에게 중고품이 되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 그리고 새로운 사랑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도려내고 잘라내어 최대한 원품 가까이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매우 아플거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참된 의미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을 다시 다듬는다. 설사 내가 아닌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청산했다 할지라도 정리는 오롯이 본인인 나의 몫이다. 이렇게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는 법 또한 깨닫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절대 헤어진 연인과는 다시 연락하지 않는다. 연락을 한다는건, 새로운 나의 사랑이 중고품으로 전락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나는 절대 나의 새로운 사랑이 중고품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필시 최소 매너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새로운 사람과의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이며, 내 스스로와의 약속 이기도 하다.



이글은 성공기가 아닌 성장기다. 나의 전공의 다양성을 이야기 하는 글로 시작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질문을 던졌고 답을 정했다. 물론 나의 인생과 여러분의 인생은 다르다. 그러기에 나 역시 여러분들에게 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떠한 질문을 했는가를 전달 함으로써 여러분 스스로 인생의 문제와 선택에 앞서 질문하는 법을 조금은 전해주고 싶다.


내 인생의 중요 3요소는 ‘일', ’성공', ’사랑' 이다. 일과 성공은 그동안의 성공기를 통해 많이 접했겠지만, 사실 사랑이란 요소 역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이 3가지 문제가 분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호주에서 걸려온 당혹스러운 전화처럼, 언제나 삶에 있어서 문제는 서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더욱 더 복잡해 보인다.

복잡한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성적으로 대하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속에 시간이라는 리소스는 고갈되어 결국 주변이 흐르는 대로 선택을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런 문제들 역시도 고민하려 애써왔고, 그로 인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전화가 걸려온 당일. 나는 주변의 만류에 따라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 먼 땅으로 날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나 스스로의 질문에 의한 것이었고, 덕분에 그 몫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변화 없이는 내일이 찾아 오지 않는다. 대다수가 선택하는 답을 따라가면 어제와 같은 오늘을, 당신과 같은 내가 될 뿐이다. 그렇게 양산된 청춘이란 보급형 양산품은 똑같이 인생이 어렵다는 한탄만을 내 뱉을 뿐이다.


아마 주변의 조언대로 호주를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교수님 몰래 갔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지금쯤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옳은 결정을 했고, 덕분에 여자때문에 인생이 망했다라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그 선택은 옳은 질문으로 부터 출발한다. 큰 범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간단한 두 질문이 항상 여러분들을 옳은 답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끝으로 나의 옛 연애 이야기가 인터넷 어딘가에서의 가쉽거리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일’, ‘성공’, ‘사랑’ 이라는 세가지 주제로 끊임 없이 질문 하던

나의 소중한 학생 시절 이야기중 하나이고,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혹은 이미 던졌을 질문들이며,

앞으로도 젊은 우리들을 끊임 없이 괴롭히게 될 주제이면서,

마지막으로 인생에서의 다른 모든 주제와 다르게 ‘나'와 ‘너'의 합의가 필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 by g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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