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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독립연습#3 - 36계 줄행랑

36계 총설은 승전계, 적적계, 공전계, 혼전계, 병전계, 패전계로 나뉘어져있다. 싸워서 이기기 위한 전략같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굉장히 오래전에 쓰여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도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회사 상사문제로 2년 동안 회사와 싸우면서 힘이 들 때마다, 삼국지나 손자병법 등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다고해서 욱하는 내 성격이 어디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라, 생각처럼 잘 쓰여지지는 않는게 현실

36계 중 패전계(敗戰計)는 상황이 가장 불리한 경우 열세를 우세로 바꾸어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전략이다. 즉, 회사생활에서 상사를 이길 방법은 딱히 없기 때문에, 아마 대다수의 직장인이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패전계에는 흔히 아는 미인계를 비롯해 여러 것들이 있지만 역시 내 눈에 뛰는 것은 36계의 마지막 전략인 주위상(走爲上)이다. 즉, 도망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의미다.

사실 주위상은 일단 달아났다가, 후일을 도모한다는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내 삶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껄끄러운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있지만, 싸움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즉, 싸울 수 있는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나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보고자 한다.

한때는, 상대의 시비를 받으면 내가 맞받아쳐야 내가 그 사람에게 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긴다 한들, 내게 돌아오는 것은 승리에 대한 통쾌함보다는 저 사람이 나에게 공격한 것에 대한 불쾌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 아버지 사무실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는 깽판을 벌였는데 (전)직원의 남편이 자기 마누라가 돈을 덜 받은 것 같다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그 남편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고 그 직원은 임신상태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돈을 벌어와야하는데 임신을 했다며 발로 그 분의 배를 밟았다고 들었다. 여러 문제가 있어 결국 그 분은 사무실을 그만두셨고, 상황을 대충 아는 아버지도 돈을 두둑히 챙겨주신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 그 남편이란 작자가 한탕 뜯어내려고 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원하는 돈을 그 사람에게 주셨고, 웃고는 있었지만 또 한 번 찾아오면 그땐 경찰을 부를 것이니 그리 아시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같았으면 바로 경찰을 불러 쫓아냈을텐데,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하셨냐고 물어봤더니,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은 이랬다.

저 사람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아빠는 저런 사람과 싸우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싸우는 것도 상대 봐가면서 싸워야한다. 서로 위로 올라가기 위해 싸우는 것은 경쟁이지만, 저 사람처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싸우는 것은 절벽으로 같이 떨어지는 행위야.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 딱 그 상황이라고 보면된단다. 너도 나중에 누군가와 싸울 일이 생기면 그 상대가 무슨 싸움을 하려고 하는지부터 알아야한다.

그 때에는 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이길 것 같지 않은 싸움에서 도망침으로써, 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보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몇주 전부터 회사에서 전 팀장이었던 그 여자와 더이상 언쟁하지않고 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싸워봤자 나빠지는 것은 내 기분이고, 좋아지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힘들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 방법이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죽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트러블이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말고, 그냥 피하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라고 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