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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인(雜想人)

잡상인(雜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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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꽤나 자주 과거 사진을 꺼내보곤 한다. 위 사진은 베를린 미떼 지구의 사진이다.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영하 4도에 검은 구름이 짙게 껴서 회색빛만 돌곤 하지만, 이렇게 화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길게 뻗어선 트램 라인 그리고 그 위로 전신주가 길게 뻗어있는데.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그리고 양옆으로, 가로로 줄이 여러 개 이어지는데 눈앞으로 스케치를 하는 모습이다. 멀게는 자전거를 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 동네를 살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던 게 기억이 난다.


요즘은 유독 새벽 시간에 잠을 누르고, 버틴다. 차라리 새벽에 생각을 적는 게 낮보다는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늦잠의 죄책감은 말로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가 써놓은 것들을 보다 보면 재밌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꽤나 가끔, 도대체 이런 걸 왜 적은 건가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사진 속 시간을 포함했던 기간 동안, 난 조금은 긴 여행을 혼자인 채로 떠났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은 많아졌다. 생각이 많을 때는 가끔씩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보기도 했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을 마음 내킬 때 써보곤 했다. 전혀 놀랍지 않게도, 누구와도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서 진지하게 이런 생각들을 공유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게 오히려 불편하지는 않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죽 드래그 해놓고 보기 시작한다. 대부분 인생살이에 관한 글이나 이미지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절묘하게 캐치해서 그걸 잡아내거나, 혹은 뚜렷한 통찰력으로 글을 이어나가거나, 아니면 정말 창의적이거나 멋진 것들. 주로 그러한 것들을 본다. 약간의 존경심과 경이로움, 그리고 세상엔 이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지각한 뒤에 오는 두려움. 막연한 경쟁심과 씁쓸한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는 것은 '흥미로움'이다.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는 일련의 경험과 그런 인상을 주는 '작품'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고, 실제로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을 그냥 넘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내 기억의 아나카이브, 정제되지 않은 뇌 속에 집어넣으려고 적어도 노력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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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자주 찍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얼마 전 면접에서 " 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냐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순간포착하는 것을 즐긴다고 답했다. 그 대답은 아주 사실적이었고, 나는 실제로 꽤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안타까운 것은 - 꽤나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격정적으로 쏟아부어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대부분은 내 감각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을 피칭해서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노력을 쏟아붓진 않았다. 늘 사용하는 핸드폰의 간단한 조작을 통해서, 몇 번의 터치를 통해서 쉽게 찍어진 사진. 심지어 나는 약간의 손을 떠는 버릇인지, 아니면 진짜 불행하게도 수전증이 있는 건지 대부분의 사진의 핀 이 나가기 때문에 여러 번 찍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비참한 결과물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태생적으로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영양가가 바닥난 푸념에 불과하겠지만, 내 사정을 설명하자면 그렇다.


소심한 인간으로 살아온 나에게, 사소한 것을 넘어서는 일들은 인생에 좌절감을 주곤 한다. 사진 찍는 것이 그러했다. 나는 사진가도 아니고, 사진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더 재밌는 점은 아예 기계를 다룰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좌절감이 주는 인생의 편차 덕분에 전문적 노하우를 습득하고자 하는 노력은 뒷전으로 미뤄뒀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고 그리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에 있어선, 계속 해나가고 싶은 유전자 같은 것이 있나 보다. 게다가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되거나 하는 날에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은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에게 꽤나 의미 있는 것이고 계속해나가고 싶은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긴 여행 이후에는, 이런 것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조금씩 더 욕심내서 꾸준히 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 생각을 좀 멈추면 복잡해지지 않으려나? 근데 이건 아마도 불가능할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