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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 essay 《허들을 돌아가는 햄스터》


허들을 돌아가는 햄스터
written by 현요아


“이제 소설은 그만 쓸래.”

H가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교수님들이 입을 모아 졸업 전에 등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극찬을 받았던 친구였다. H는 급히 결정한 게 아니라고 했다. 예고부터 대학까지, 장장 7년 동안 소설만 쓰는 일이 힘들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끝이 안 보여. 쟁쟁한 애들도 너무 많고, 매번 뭔가를 쓰고 고치는 삶의 연속이야. 어렵게 등단해도 먹고 산다는 보장도 없어.”
“그런데 너는 이제까지 칭찬도 많이 받았고, 어마어마한 경쟁률도 뚫어서 실기로 붙었는데.”
“에이, 칭찬받는 애들 많아. 실기로 온 애들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H는 마치 부모님께 휴학을 허락받으려는 딸처럼 모든 반박을 준비했다. 머리가 굳었나 봐. 예전처럼 글도 잘 안 써져. 또… 한 길만 파다가 안 되면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을걸? 마음을 굳히고 취준생이 되겠다는 친구를 더는 말리기 어려웠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등단과 출판의 팍팍함을. 소설은 레드 오션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소설가도 있었지. 글을 그만두겠다는 이가 비단 H뿐만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그 친구를 기점으로 현실이 와 닿았다. 이제 아무도 없었으니까. 사 년 전과 같은 꿈을 꾸는 친구는.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던 해, 네 명의 유망주를 만났다. 인천에서 왔다는 L은 웹툰 작가를 꿈꿨고, 대구에서 왔다는 K는 드라마 작가, 속초에서 왔다는 P는 동화 작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H까지 모두 서로의 가능성을 믿었다. 등단할 때까지 꾸준히 글을 봐주자고, 졸업 후에도 합평 모임을 해나가자고 약속했건만 불과 사 년 만에 우리는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이젠 모두 공무원을 꿈꾼다. 영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글감을 만들겠다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던 친구는 이제 어두운 낯빛으로 계약직은 진절머리난다고 말하고, 독일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던 친구는 기업을 준비하겠다는 말 이후 연락이 끊겼다. 어릴 적부터 노래 하나는 기막히게 불러 실기로 성악과에 당당히 붙었던 친구는, 졸업 후 자신감을 잃고 미래에 의문을 품는다.

사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고학년이 되니 부쩍 어른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보다 슬픈 사실은 이런 말에 부딪히기 전에도 스스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 석 달을 종일 매달려 썼던 소설이 B-를 받았을 때, 똑소리 나도록 야무진 친구가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릴 때, 나만 뺀 모두가 나아간다고 느낄 때면 우리가 우리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그것도 한입 가득히 왕! 하고.

무작정 쓰러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면 내성이 생긴다는 얘기는 다리 가득히 상처가 남아 오히려 작은 충격에도 허청대는 사실을 간과한 말이다. 학점이 매겨진 글과 졸업 작품에서 떨어진 영화가 있는 세상.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해도 결국 붙지 않으면 그간의 노력을 헛고생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가능성을 믿는 건 내 키만 한 허들을 넘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럼 난 내 가능성을 믿고 정진했냐고? 전혀. 오히려 허리 즈음까지만 오는 허들을 봐도 돌아갈 궁리를 했던 사람이다.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혹여 칭찬을 받으면 부정하기 바빴고, 작가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작년 봄에, 홀로 떠난 경주에서 동행을 만났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글을 쓴다고 답했다. 그는 쓴 책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 안 냈으면 뭐 어때, 글 쓰면 작가지!”

등단하고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단행본을 내야만 “저는 작가예요.”라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여겼다. 성공할 가능성은 마치 운처럼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니 일찍 포기하는 게 도리어 용기라고 나를 다독였다. 허들을 돌아가는 햄스터 모양이었던 거다. 스스로 자신감을 갉아먹느라 충분히 도전할 기회들도 날려버리는 열등감 가득한 햄스터.

경주를 다녀온 뒤에도 나는 여전히 책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면 이름 옆에 작가를 붙여본다. 계약된 출판사에게 원고를 보내듯. 이렇게 즐거운 상상으로 힘을 내 걸어보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허들 앞에 털썩 주저앉아 버릴 때도 있다. 걷는 도중 만난 햄스터들의 능력에 위축되어 자존감을 갉아먹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우대받는 세상이라 자주 초라해지지만 분명한 건 허들을 넘기 위해 체력을 키우려 노력한다는 것.

글쟁이가 되고 싶은 내가 체력을 키우는 일은 다름 아닌 글이었다. 무모한 도전인 걸 알지만 숱한 에세이들 사이에 내 일기를 올렸고, 혹독한 무관심을 버텨냈다. 어느 날, 한 명의 독자가 생겼다. 그렇게 내 얘기를 발견한 첫 팬은 부지런히 지인들에게 글을 날랐고, 덕분에 점점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찾았다. 과제가 아닌 글. 교수님이 아닌 대중이 보는 글. 수업 안에서는 매번 혹평만 받던 내 글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니. 자존감이 높아지니 글을 쓰는 게 두렵지 않았다.

허황된 꿈이 꽤 가능성 있는 꿈으로 바뀌는 건 칭찬 덕이었다. 꿈으로 향하는 과정을 응원하는 이와 그에 보답하기 위해 더 멋진 글을 내놓으려는 나. 하지만 친구들도 꾸준히 내 꿈을 바랐건만 왜 이제야 깨달았나, 하니 내가 날 믿지 않아서였다. ‘칭찬은 모두 거짓말이야.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겠어. 나는 실기로 입학하지도 않았고, 글로 상을 받은 적도 없어.’라고 보호막을 아주 두껍게 만들었으니 어떤 말을 들어도 튕겨버릴 수밖에.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나는 방학 동안 이틀에 한 편씩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그 글들은 모두 모아 책으로 만들! 지는 못 했고, 꿈의 잡지사에 투고했다. 그런데 학점도 안 좋고, 자격증은커녕 어학 점수도 하나 없던 내가 인턴 에디터로 뽑혔다. 얼떨떨했다. 블로그에 와야만 읽을 수 있었던 내 글이 지면에 실려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니. 물론 혹평도 받았다. 악플을 읽을 때면 한동안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다. 더는 흐를 콧물이 없어지면 다시 글을 썼다. 모두 팬으로 만드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돌아갔던 허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내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주말마다 캘리그래피 학원에 다닌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때. 내 키의 두 배, 세 배 만한 허들도 폴짝 넘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믿음이라는 걸 배웠기에 꿈을 접으려는 친구들에게 내 믿음을 온전히 전달하리라. 우리, 조금씩 하나씩 해보자. 내가,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내가 너의 첫 번째 팬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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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매년 봄에 열리기는 하지만 대학생 신분이 끝나면 지원할 수 없는 공모전이기에 꼭 수상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건만 장려상도 못 받고 떨어진 내 모습을 보니 ㅠㅠ 내 가능성을 믿지만 또 휘청휘청거리는고나.. 그래도 또 다른 공모전에 도전해봐야지. 우선 글을 놓지 않는게 올해 가장 이뤄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한글을 처음 배우듯 겸손해져야겠다. 기대를 모두 버리지는 않되 자만감은 버려둬야지. 초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