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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영어 이야기] #03. 문법, 나만 어려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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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이 어려워서 영어를 포기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나만 어려운 건 아니었나 보다. 우리를 애먹이는 문법.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

Grammar is very important when you learn foreign languages. It enables you to speak, read, and write correctly. But anyone who has ever tried to memorize gender of nouns or past participles of verbs in French would agree that sometimes grammar can be a true pain in the neck. Is it even possible to master grammar when there's almost always exceptions to rules?





내겐 너무 어려운 문법



나는 고등학교 때 따로 문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전체 수석도 아니면서 “교과서만 공부했어요”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사실 ‘성문 기본 영어’를 공부해보려고 시도는 했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냥 포기했다. 자랑이닷! -_-;; 그래도 기본적인 문법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단어 뜻만 알면 문제의 지문을 해석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덕분에 교과서만 공부했어도 수능 시험을 잘 치를 수 있었고, 나는 대학까지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문제가 불거진 건 토익시험을 준비하면서 였다. 토익의 문법 파트는 푸는 것도 어려웠지만, 문제 풀이를 읽어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제 풀이에 쓰여 있는 문법 용어조차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진작 문법 공부를 할 걸 그랬나, 걱정과 후회가 밀려왔다.




문장을 외웠다. 달. 달. 달.



대학생 시절 나는 학교를 1년 휴학하고 신촌에 있는 작은 어학원에서 장기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영어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학원 강사 선생님들은 수강생도 아닌 내게 영어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곤 하셨다. 내가 문법을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건 부원장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과외를 해주시거나 특별히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신 건 아니었다. 다만 숙제를 내주셨고, 그걸 매일 확인해 주셨다. (다시 말하지만, 숙제 확인만 해주셨지 문법을 가르쳐 주시거나 설명해주시진 않았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문법책 하나를 고른다. 아무거나 상관없다. 그 책에 쓰인 설명을 읽어본 후 (이해가 안 가도 상관없다. 그냥 한번 쓱 읽고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나온 예시 문장을 공책에 옮겨 적는다. 공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는 영어 문장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한글 해석을 적는다. 이렇게 하면 대략 한 페이지에 20여 개 정도 문장이 나오는데, 하루에 한 페이지씩 매일 달달달 외워야 했다. 안 보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영어 문장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잠시도 머뭇거리거나 뜸 들이지 말고, 무릎 관절을 치면 다리가 저절로 하이킥을 하듯이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달. 달. 달.

내가 매일 선생님께 숙제 확인을 받으러 가면 선생님은 그 페이지에서 아무거나 3, 4 문장을 골라서 우리말 해석을 불러 주셨다. 그러면 나는 바로 그 해석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을 외워서 대답했다. 숙제를 확인하는데 2분도 채 안 걸렸지만, 나만을 위해 시간을 내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서 한 번도 문장 외우는데 더듬거린 적이 없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이렇게 책 한 권이 끝날 때까지 반복했다. 내가 처음 고른 책은 집에 굴러다니던 ‘성문 기본 영어’였는데, 책이 얇아서였는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선생님은 딱 한권만 더 해보자고 하셨고, 이번엔 ‘성문 종합 영어’ 외우기에 들어갔다.


왼쪽엔 영어 문장, 오른쪽엔 우리말 해석. 이렇게 해놓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 꾸준히 외웠다.

매일 20여 개의 문장을 외우는 건 걱정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집중만 잘하면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주로 학원에 출퇴근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전철에서 외웠고,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책을 두 권째 하다 보니 예시 문장도 똑같거나 비슷한 것이 많았고, 이렇게 반복이 되자 오히려 더 잘 외워졌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이 채 끝나기 전에 토익시험을 봤고, 문법 파트에서 점수가 껑충 뛰어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왜냐하면 난 문법책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법책은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나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였고, 설명을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럴 땐 그냥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넘어갔다. 오직 예시 문장만 주구장창 외웠다. 그런데도 문법 시험에서는 답을 잘 맞힐 수 있었다.




‘자연스레 입에 붙는 말’이 되려면 우리가 접하는 영어의 절대량이 많아야 한다.



나는 문법 문제를 풀 때 이건 무슨 용법이고, 무슨 구절이고 하면서 분석하지 않았다. 그저 문장을 읽고 가장 자연스럽게 읽히는 걸 답으로 고르면, 그게 정답이었다. 쉬운 예를 들기 위해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괄호 안에서 알맞은 말은 무엇인가?

사자(가/이) 있다.
곰(가/이) 있다.

당연히 ‘사자가 있다’‘곰이 있다’가 답이다. 그냥 가장 자연스레 입에 붙는 말을 고르면 그게 정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의 뒤에는 주격 조사 ‘가’가 와야 하고,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는 주격 조사 ‘이’가 와야 한다.”라고 하나씩 분석하고 있으니 문법이 어려웠던 거다.

물론 우리는 한번 딱 보면 어떤 게 자연스러운 말인지 알 수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아무리 읽어봐도 어떤 게 자연스러운 문장인지 모른다. 그들이 접한 한국어의 절대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입에 붙는 말’이 되려면 우리가 접하는 영어의 절대량이 많아야 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해봐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나처럼 예시 문장이라도 달달달 외워야 한다. 그래야 문장을 봤을 때 어떤 게 문법에 맞는 문장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자연스레 입에 붙는 말'이 되려면 우리가 접하는 영어의 절대량이 많아야 한다.


우리는 문법을 왜 공부하는가? 어법에 맞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말하고(쓰고), 영어로 된 글을 잘 해석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비근한 예로 I stopped to think와 I stopped thinking은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나는 생각하기 위해 (걷는 걸/하던걸) 멈췄다.”이고, 후자는 “나는 생각하는 걸 멈췄다.”이다. 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stop(멈추다)와 think(생각하다)의 뜻을 알더라도 자기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오해할 수 있다. 반면, 문법에 맞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의사소통만 제대로 된다면 ‘관계대명사’니 ‘현재 완료’니 ‘관계부사’니 하는 용어는 몰라도 상관없다.

정말로 문법 용어를 몰라도 상관없냐고? 당신에게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친구가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아이스크림 먹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설명해 준다. “‘먹어’라고 하면 나보고 먹으라는 말 같잖아. 이럴 땐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라고 하는 거야.” 외국인 친구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라는 문장을 달달 외워서 나중에는 “나 피자 먹고 싶어. 치맥 먹고 싶어.”하는 문장까지 응용해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어 실력이 늘어날수록 아랫배도 더불어 나올 테고 말이다.

이때 그 친구에게 제대로 된 문법을 가르치겠다고 “‘먹어’는 틀렸어. ‘-어’는 종결 어미인데, 동사의 어간 뒤에 붙어서 상대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권유할 때 쓰는 거야. I want to eat이라고 말하려면 ‘싶다’라는 보조 형용사를 써야 해. 이 보조 형용사는 항상 동사의 연결 어미 ‘-고’ 뒤에 와. 그러니까 ‘아이스크림 먹어’나 ‘아이스크림 먹어 싶다’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라고 해야 해.” 이렇게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대답해준다면? 아마 그 친구에게 평생 아이스크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


보조 형용사고 나발이고, 그냥 좀 먹으면 안 될까? 냠냠!


그래도 독해를 잘 하려면 문법 용어를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일단 아래에 있는 세 문장을 읽어 보자.

  1. 떡판같은 외모
  2. 같은 녀석은 혼 좀 나야 돼.
  3. 같이 하면 큰일 나.

이 문장들을 읽고 이해를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번 문장에 있는 '같은'은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라서 '떡판'과 붙여 써야 하며, 2번 문장의 '같은'은 형용사라서 앞 단어와 띄어쓰기를 해야 하고, 3번에 있는 '같이'는 부사격 조사라서 앞 단어와 붙여서 써야 한다는 걸 다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명 생활하면서 수도 없이 많이 써왔을 '같은'과 '같이'이지만, 그게 접미사인지, 형용사인지, 조사인지 신경은 안 썼을 것이다.




생활 회화를 잘하고 싶은 거라면 굳이 어려운 문법 용어에 함몰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정확한 문법 용어와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영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에서도 언급했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의 기준과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문법 공부를 하면 된다. 영문학 전공자라면 그에 합당한 문법 지식을 쌓아야 하겠지만, 그냥 생활 회화를 잘하고 싶은 거라면 굳이 어려운 문법 용어에 함몰될 필요가 없다.

문법은 영어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문법만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문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만일 문법 용어가 어려워서 문법을 포기했다면 나처럼 문장 외우기를 통해 ‘자연스러운 영어’를 익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장을 통째로 외우면 문법뿐만 아니라 말하기/읽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문장 외우기'보다는 문법 설명을 이해한 뒤 문장을 분석하며 공부하는 게 본인에게 더 맞는 공부방법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좋다. 난 이 글에서 '문장 외우기'가 최고의 공부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문법 용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생활 회화가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문법 체계를 꼼꼼히 공부하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다행히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고리짝 시절과는 달리 요새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문법책이나 인터넷 사이트가 많이 있다. 우리말 문법책뿐만 아니라 영어로 되어 있는 Grammar in Use 같은 책도 좋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하든, 어떤 책으로 공부하든 이것만은 기억하자. 우리는 문법 용어를 외워서 문장을 분석하려고 문법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문법을 공부하는 이유는 영어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 모두 어려운 문법 용어에서 해방돼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공부했으면 좋겠다.



덧)

1.
그럼 문장을 어느 정도 외워야 문법의 체계가 잡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문법이라면 문법서 한 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시험 성적을 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두 권을 외웠고, 몇년 후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Grammar in Use를 다시 공부했다.

2.
할 일도 많고 바쁜 와중에 문장을 매일 20여 개씩이나 외울 수는 없을 거다. 문장 개수에 구애받지 말고 하루에 3개씩이라도 같은 유형의 문장을 외워보도록 하자. 잊지 말자. '매일의 힘'은 결코 얕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이의 영어 이야기] 지난 글들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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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영어 이야기] #01. 영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불이의 영어 이야기] #02. 영어를 잘 하는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