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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재] kr-fiction 이계백과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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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딱히 별다른 일이 생기진 않았다. 김은 곧 안정을 찾았다. 괜한 소리를 한 것 같다면서, 다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다 금방 헤어졌다.

나도 괜찮을 줄만 알았다. 그날의 주정은 좀 심했다지만 김이 그런 소리를 한 게 처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사단이 나버린 것이다.

영정사진 사진 속 김은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계백과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그가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도 거의 없던 것 같다.

홀로 빈소를 지키며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자 나는 그만 장례식장을 떠났다. 뒤처리는 사설 장례업체에 맡겼다. 미안한 일이지만, 김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도 오늘까지다. 나머지 화장절차며 안치까지는 전부 장례업체에서 알아서 해줄 것이다. 앞으로는 또 그가 남긴 채무 관련 문제로 머리가 아플 예정이다. 그와 아주 조금이나마 관계라는 사슬로 엮여 있는 것이 나뿐이니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여차하면 기회를 보아 얼른 발을 뺄 생각이다. 우정과 신의를 지킬 이도 이미 세상을 뜨고 없는데, 굳이 사후약방문에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는 없을 터다.

허나 이렇게까지 그의 뒤를 봐주는 건 역시 내가 그와 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서가 아닐까? 그렇기에 무엇보다 세상을 떠난 김을 위해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하루 전, 그는 내게 이계백과를 완성했다며 원고를 보내왔다. 사실 난 그 때문에 더욱 그의 죽음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김은 아무런 내용도 없이 그냥 메일 제목에 -이계백과- 라고만 써서 워드로 작성한 문서파일 하나만 덜렁 보냈다.

대충 한 번 훑어봤는데 그가 떠들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아주 방대하고 알찬, 기괴하고 신비로운 내용으로 그득했다. 품격 있고 깊이 있는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흥미로운 에피소드들 또한 여전했다.

난 이계백과의 앞부분을 훑어보았을 뿐인데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섰다. 나는 이 작품만은 어떻게든 세상에 제대로 내보일 작정이다. 경찰에도 그가 죽기 전 남긴 유작이 있다고 귀띔은 했는데 딱히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대충 내용을 설명하자 손사래를 쳤을 뿐이다. 난 솔직히 그때 좀 화가 났는데, 무성의한 경찰의 태도 때문이라기보다는 김의 작품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곧 세상을 놀라게 할 테니 기대하는 게 좋을 거다.

김의 갑작스런 죽음은 갑작스런 마지막 작품을 탄생시켰다. 거기다 그 작품은 그가 지금까지 쓴 작품들을 총망라한 백과다.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후에 그 명성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는 수없이 많다. 나는 김도 그리 되리라, 아니 그렇게 만들어 주리라 다짐했다. 나는 필요하다면, 그의 죽음마저도 그의 작품을 홍보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죽음은 비극이나 창작에 대한 열정이 격렬한 나머지 병적인 집착마저 담긴 그의 마지막 작품이 사장되는 것은 더욱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미국의 출판사와 잡혀 있는 미팅날짜도 코앞이다. 김의 작품은 아무래도 환상문학의 본고장인 미국 쪽에서 더 잘 팔릴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장례식장에서 쪽잠을 자다 말다 하룻밤을 거의 지새우고 돌아오니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이고 뭐고, 우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간 경찰서니 국과수니 장례식장이니 싸돌아다니며 너무 피곤했다. 김의 유작인 이계백과부터 제대로 검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이 침침하고 몸이 나른한 것이 좀 자둬야 뭘 해도 할 것 같았다. 거울은 보지 못했지만 나도 김처럼 눈 주위가 까매졌을 것이다.

난 곧장 침대로 갔다.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오후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냥 내리 다음날 아침까지 자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나왔다. 깼으니 이제 일이나 하자는 생각에 세수부터 했다. 그래도 잠을 좀 자니 개운해졌다. 이미 김의 죽음은 머릿속에 없었다. 오로지 이계백과만이 가득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부터 부팅 시킨 뒤,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TV도 켰다. 소리를 죽이고, 점멸하는 불빛과 전자파만 나오게 뒀다. 그리 해두면 조용해도 혼자가 아닌 듯, 왁자지껄한 느낌이 들어 좋다. 요즘 TV라는 가전은 보통 이런 용도 아닌가?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곧바로 김의 마지막 작품을 열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글은 평소 김의 성격답게 당장 출간을 해도 별 문제가 없을 만큼 완전무결하게 작성돼 있었다.

늘 그랬다. 실상 편집자인 내가 하는 일이라곤 어쩌다 눈에 띄는 오탈자를 수정하는 수준이었다.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가끔 그와 만나 그를 만나 그와 이야길 나누고, 제대로 된 밥을 한 끼 먹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뭐 가끔 글의 순서를 보정하는 때도 있었는데, 나중에 보면 꼭 김이 원래 썼던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 것 같아 어지간하면 글 자체는 손을 대지 않는다. 이계백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초반엔 이계에 대한 간략한 세계관과 설정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다음 이계의 존재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과 인간이 관련된 이야기가 각각 이어진다. 그런 이계백과는 분량이 A4용지로 500페이지에 달하고 있었다. 어둠의 일족 편도 보강이 되어 실려 있었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몽환적인 느낌과 강한 흡인력으로 나는 금세 김의 유작 속에 빠져 들어갔다.

얼마나 그렇게 읽었을까? 커피가 바닥을 보이고도 한참을 더 읽었다. 그제야 분량을 살피니 절반을 넘기고 있었다. 역시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전연 들지 않았다. 김이 원고를 넘기고 나서야 죽음을 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좋은 글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써온 그 어떤 글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기존에 써왔던 이계와 이계의 존재를 정리해놓은 부분도 기존의 내용을 수정하는 수준이 아닌 완전히 다시 썼다. 그렇다. 이계백과는 오롯이 새로운 작품이었다. 비록 작가가 죽고 없어질 정도로 많이 늦었지만, 나는 이 작품만은 반드시 성공시키리라 재차 다짐했다.

그전에 우선 담배부터 한 대 피워야겠다.

나는 여느 때처럼 담배를 한 개비 귀에 꽂고, 베란다로 나갔다. 밖으로 난 창을 활짝 열고 일단 고개를 내밀어 위층을 살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면 다들 알 것이다. 아래층에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잘도 위층까지 스민다는 걸 말이다. 최근엔 주민신고가 많아 베란다에서 흡연을 삼가라는 공고문까지 나붙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러 10층인 집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건 너무도 귀찮은 일이다. 다행히 위층은 조용했고, 불도 꺼져 있었다. 사람이 없거나 이른 잠자리에 들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힘껏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길게 뿜어냈다. 오늘 피워 무는 첫 담배인지라 머리가 조금 띵했다. 나는 한쪽 팔은 베란다 난간에 걸치고, 담배를 피우며 어둠이 내린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내가 사는 곳은 상당한 규모의 대단지아파트였는데 산을 깎아 만들어 내내 오르막이다. 큰 길로 나가 합류할 수 있는 2차선 도로와 인도가 단지 중앙에 길게 나 있고, 양 옆으로 아파트들이 가지를 뻗듯 옹기종이 군집한 형태였다. 내가 홀로 사는 아파트는 오르막 단지 제일 꼭대기의 가장자리에 있다. 그래서 밖을 내다보면 쭉 뻗은 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이 빛을 뿜고 있었고, 사이사이 가로수가 그림자를 만들었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 없으니 상당히 질서정연하고 운치 있는 풍경이었다. 어째 이날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담배는 절반이나 타 없어졌는데 차 한 대, 사람 하나 올라오질 않으니 말이다.

그때 멀찌감치 단지 맨 아래쪽 가로등 아래 얼핏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당연히 나의 시선은 고정된 풍경 속 움직이는 인영을 쫓았다. 스산한 바람이 한차례 훅 불어 가로수를 흔들었다. 재차 담배를 쭉 빨아 당기는데, 막 그림자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 좀 수상, 아니 괴상했다.

뭐지?

성인 남자,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남자는 아파트 중앙도로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의도적으로 가로등 불빛을 피하며 지그재그로 뛰고 있었다.

어떤 모양새인고 하니, 가로수 그늘 아래 서 있다가 갑자기 후다닥 뛰어서 건너편으로 가고, 또 잠깐 그늘 아래서 그림자만 비치다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뛰었다. 그건 그냥 그렇다 치자. 더 이상한 건 그 남자가 뛰는 모습이었다.

두 팔을 반쯤 벌려서 위로 들어 올린 괴상한 자세인데, 뛰는 내내 맞바람에 깃발이 휘날리듯 흐느적거렸다. 허리는 뒤쪽으로 잔뜩 꺾여 있었고, 두 다리는 심하게 안쪽으로 휘어진 채 앞으로 나와 있었다.

고개는 아래로 푹 수그리고 있었는데, 머리가 무슨 자동차 대시보드 위의 버블헤드 인형마냥 뛸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러다 갑자기 아래로 머리통이 툭 떨어져버리진 않을까 심히 우려될 정도였다.

거기다 발을 구르는 것과 남자의 뛰는 속도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는데, 발은 몇 번 구르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 금세 반대편에 가서 닿았다.

그렇게 남자는 조금씩 위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고, 점점 더 가까이 보였다. 단지 내에 그 남자뿐이었다. 차도, 다른 사람도 없었다. 난 무슨 신기한 동물이라도 구경하듯 남자의 모습을 관찰했다. 볼수록 이상했다. 무슨 실에 매달린 종이인형도 아니고........ 연신 어설프게 허우적거리면서도 착실하게, 빠르게 남자는 위쪽으로 올라왔다.

탁탁탁!

이제 바닥에 닿는 남자의 발소리가 귀에 들려올 만큼 가까워졌다.

어?

그제야 남자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했다. 남자는 맨발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의 발목이 바깥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발끝이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아마 보통 저런 장애가 있다면 절대 뛰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탁탁 소리를 내며 비틀린 발목에 맨발로 잘도 뛰고 있었다. 고개는 여전히 아래로 떨구고 있어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아슬아슬하게 타들어간 담뱃불의 열기가 손가락 가까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앗 뜨뜨!"

갑자기 울린 주머니 속 휴대폰 진동에 놀라 담배를 놓쳐버렸다.

"에이 씨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불이라도 나면 어쩌지? 걱정도 잠시, 재차 호주머니 속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세상 상조인데요."

업체명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지만 가격은 싸다. 대체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그런데요?"

"저 그게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는데........"

"뭔데요?"

"저 그게- 이런 일이 처음인데 곧 조치는 할 건데요."

"아 뭔데 그래요?!"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뭐요?"

김의 시신이 사라졌단다. 여기서 대뜸 화를 내고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한 거냐며 따졌어야 했다.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때마침 무언가 수상한 것을 보고 있었고, 그것이 막 걸려온 전화의 내용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어떤 불경하고 허황된 인과를 쫓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나는 탐정이 추리를 하듯 머릿속에 흩어진 정보의 조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 사지의 뼈가 부서지고, 관절이 뒤틀린 김의 시신........... 종이인형처럼 움직이는 수상한 남자........ 사라진 시신...........

그제야 조금 전, 이계백과에서 읽었던 내용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순간 소름이 등줄기를 훑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얼른 베란다를 나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시선은 앞에 둔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아예 창문을 닫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왠지 그러면 나를 완전히 잠식해오기 시작한 망상의 물결을 더욱 거세게 할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나는 얼른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봤는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돌려댔다.

“찾았다!”

'하베쉬 : 하베쉬는 보통 키가 2미터 30센티미터 정도 된다. 장님거미마냥 몸통은 작은데 팔 다리만 길쭉하다. 몸에 털은 전혀 없고, 멍이라도 든 것처럼 푸르딩딩한 색이다. 살가죽은 축 늘어지고 주름이 져 있어 마치 노인이 벌거벗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 발은 아주 크고 손톱도 날카롭다. 힘이 아주 세서 이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장사다. 머리는 작고, 눈과 코가 없다. 오직 입만 달려 있는데, 이빨은 마치 어둠의 일족의 그것처럼 뾰족뾰족하다........'

내가 하베쉬라는 이름을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그랬다. 김은 죽기 전 자신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며 저 이름을 언급했었다. 나는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하베쉬라는 요괴에 대한 묘사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나는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장난이 심한 하베쉬는 특히 인간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긴다. 하베쉬가 인간들을 놀래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자 가장 무시무시한 방법은 무엇보다 인간의 시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숱한 민화나 전설에서 무덤에서 살아나온 사자를 목격했다는 둥, 밤사이 무덤이 파헤쳐져 시신이 사라졌다는 둥 하는 이야길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담컨대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을 파헤쳐보자면 하베쉬의 장난임에 틀림없다. 하베쉬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실 같은 것을 이용해서 인간의 머리와 팔, 다리 등에 연결해 마치 꼭두각시처럼 시신을 조종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조종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목격한 세 번의 사례도 모두 죽어 있던 시신이지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례는 이어지는 하베쉬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다루기로 한다.

하베쉬들은 시신이 자연스럽게 팔, 다리를 움직이고,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도록 그런 장난을 치기 전에 반드시 시신의 팔과 다리뼈를 부러트리고, 관절을 비틀어 놓는다. 그 때문에 그들이 조종하는 시신이 움직이는 모습은 매우 기괴하기 그지없다. 물론 하베쉬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다름 아닌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듯 움직이는 하베쉬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단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러므로 하베쉬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시체 역시 무슨 연체동물처럼 사지를 연신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데 마치 물속에서 잠겨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공중에 떠있는 채 발을 구를 수도 있으며, 관절이 다 망가진 상태인지라 팔이나 다리, 손목, 발목이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뒤틀려있기도 하다...........'

이쯤 되자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니 없어야겠지만, 김이 술에 취해 주장하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는 사실에 의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이게 무슨.......... 나도 덩달아 머리가 어떻게 되어가나..........’

격무에 이어진 김의 죽음으로 심난한 마음, 스트레스와 피로에 이계백과에 대한 골몰이 더해져 나의 머리를 휘젓고, 눈을 흐리고 있는 것일 터다. 김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김만큼은 아닐 테니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될 일이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으로 뺨을 쫙! 소리가 나게 때려댔다. 정신이 좀 들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초점을 맞추어 정면을 봤다.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을 다잡은 나는 다시 베란다를 향해 갔다. 발걸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혹 무언가 여전히 밖을 배회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건 흔히, 아니 가끔 볼 수 있는 주정뱅이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베란다 난간에 도달한 나는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고개를 빼서 밖을 살폈다.

"후우.........."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헛것을 본 건지도 모른다. 일이고 뭐고 일단 잠부터 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차 긴 한숨을 뱉었다.

띵동!

갑작스런 벨소리에 어찌나 놀랐는지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군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현관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띵동! 띵동!

현관문 너머에서 누군가 재촉하는 듯 연신 벨을 눌러댔다. 현관문을 몇 걸음 앞에 둔 나는, 더 이상 전진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영화나 소설을 봐도 이런 상황에서 꼭 문을 열어보지 않나?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솔직히 너무 겁이 나서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외시경에 눈을 가져다 댈 용기도 없었다. 이게 히어로가 아닌 보통사람의 가장 합리적인 대응이다. 나는 그냥 그대로 멈춰 섰다. 이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현관문 앞에 서서 관자놀이로 막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는데, 현관문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택배요! 놓고 갑니다!”

툭 바닥에 무언가 놓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긴장이 탁 풀리며 짜증이 솟았다.

‘젠장! 진작 말하지! 꼭 밤늦게 온단 말이야! 망할!! 제기랄! 괜히 겁먹었잖아! 클레임 걸 거야!’

허나 다시 생각해보니 딱히 클레임을 걸 사유가 없다. 그저 내 정신이 심히 불안정하다는 것과 더불어 심각한 겁쟁이란 사실이 문제였을 뿐이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보았다.

검푸르게 변색된 손톱을 보았다. 베란다의 철제 난간을 붙든 하얗다 못해 투명한 비쩍 마른 손가락을 보았다. 그 손이 팔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래로 뻗은 푸르스름한 야윈 팔뚝도 보았다. 그리고 그 밑으로 살짝 솟은 머리를 보았다.

분명 허상은 아니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도리질을 쳐도 소용없었다. 내 시각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머리는 멀쩡하고 건재했다.

다음 순간, 죽어 피가 빠진 시체의 것임이 틀림없는 손가락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이더니 너무도 빠른 속도로 난간을 타고 올랐다.

순식간에 난간을 타고 오른 그것이 베란다에 훌쩍 넘어와 섰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기괴했다.

두 팔은 여전히 위로 치켜든 채 반쯤 벌리고 있었고, 두 다리는 살짝 구부러져 안쪽으로 향해 있는데 발목은 아까 본 그대로 완전히 밖으로 뒤틀려 있었다. 고개는 여전히 아래로 떨어져있었지만, 이제 얼굴을 어렴풋 볼 수 있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눈은 굳게 감겨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얇은 면 반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어디서 주워 입은 듯 허름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경악한 것은 남자의 자세나 차림새 때문이 아니었다.

“.......김.....작가............”

그렇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 김이었다.

‘그런데........ 저세상 상조 이 새끼들이 수의 값은 따로 받더니..............’

어째 차림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어차피 화장을 할 시신이고 하니 돈만 받아 챙긴 모양이다.

아니-아니-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한참 전에 죽은, 내일이면 화장될 시신이 지금 바로 눈앞에 꼿꼿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서있지 않은가?

그냥 본능적으로 뭔가 다른 생각으로 현실을 어떻게든 무마하려했던 것 같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길 기다리고 기대했다. 조금 전 현관문 앞에 서서 우두커니 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냥 기다리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꿈결처럼 환영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괴한 자세의 김은 사라질 생각을 안했다.

다음 순간, 김의 고개가 천천히 위로 치켜 올려졌다. ‘제발............’ 나는 눈을 감으려다 겨우 참아냈다.

‘제발 눈만 뜨지 마라.’

눈을 떴다. 무언가에 바짝 당겨진 눈꺼풀, 크게 치켜떠진 눈과 그 속에 초점 없는 동공이 드러났다. 정말이지 눈 뜨고 못 볼 광경이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공포와 한기가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의 입마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지....커어.......... 버.............러.............저.................”

말했다.

김의 모습이 어찌나 괴상망측하고 무시무시한지........ 나는 공포에 질려 턱까지 덜덜 떨려왔다. 이빨이 맞부딪혀 딱딱 소리를 냈다.

‘씨발! 씨발! 씨이발!’

타탁! 타타타타탁탁탁!

순간 갑자기 김이 내게 돌진해왔다! 기괴한 자세로 온몸을 비틀어대면서!

“우어억!!!”

나는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발광해버릴 만큼 놀랐다. 비명을 지르고 두 팔을 휘저으며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어느새 신발장까지 물러났는지 그만 뒤통수를 현관문에 처박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뒤통수와 목으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동시에 어디선가 끼이이이이이이익- 녹슨 창을 억지로 열어 제치는 듯, 듣기 싫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눈앞이 까매졌다.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나는 외려 안도했다.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 기절이란 걸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