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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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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열 살쯤 이었나.
tv 앞에 쪼그리고 앉아 황혼이라는 영화를 보았었다.
식구들은 단칸방에 나란히 누워 잠들어있었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난 화면의 마법에 빠져 있었다.
더빙한 성우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금씩 tv 앞으로 전진했다.
늙은 남자 주인공의 쓸쓸한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영화 내내 보여주었던 그의 젊은 시절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기억나는 거라곤 마지막 장면밖에 없다.
그것도 실제 마지막 장면이었는지 아니면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은 장면인지 확실하지 않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도 기억에 남은 표상일 뿐, 단 한 장면도 그려지지 않는다.
짧은 영화 한 편에 한 사람의 일생을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연출과 편집 기술에 의해 필요한 만큼 건너뛴 시간이 영화에서는 여백으로 남는다.
혹여 영화에 여백이 없다 해도 마음속에는 아련한 여백이 생긴다.
그런 아련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주인공의 행복했던 시절이나 불행한 말년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서사가 마음속에 자국을 남긴 것이 아니었을까.
웃고 울고 생각에 잠기던 한 사람의 일생이 어린 나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남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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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또는 황혼을 지난 모든 이들의 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다.
나도 언젠가 황혼을 맞겠지만, 어떻게 산다고 해도 나를 들여다봐 줄 누군가의 눈에는 또 하나의 감동으로 보일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황혼이라는 영화가 늦은 오후에 갑자기 생각났던 건 마침 해가 맞은편 길 너머로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아채지 못할 미세한 잔주름 하나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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