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조남주 작가 : 여성이라는 이름의 착취, 그리고 성찰

이 책을 선물받은 것은 작년 7월.
이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있었으며,
페미니즘적인 소설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리고 주제에 딱히 흥미가 생기지 않아 책읽기를 미뤄두었는데
이번에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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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먹먹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당연하지 않은 문제에 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해주었다.

제 3자의 시각(정신과의사)으로 쓰여진 덤덤한 문체는
사회가 여성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바라보는 시선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상황마다 김지영씨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 독자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추측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고 무수히 노출되었던 그동안의 착취와 억압과 혐오와 차별들,
내재되어 있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덮어두었던 그 이유 모를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더 세밀하게, 객관적으로 그 원인을 더듬어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도 남동생이 있다.
어렸을때부터 남아선호사상으로 겪어왔던 은근한 차별들.
알 수 없는 심리적 박탈감과 무엇 때문이었는지 몰랐던 크고 작은 분노들.

어려서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켜서는 당연시 여기며 가려진 그것.

그것은 여성이라는 이름의 착취였다.

셋째가 또 딸이라는 "재수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울면서 낙태를 한 엄마.
'감히' 귀한 손자 것에 욕심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 할머니.
바바리맨을 잡은 중학교 친구들은 학교에서 훈장을 받은 대신 근신을 받았고,
남학생들에게는 거의 없다시피한 복장 규정이
여학생들에게만 엄격하여 치마길이부터 러닝셔츠, 스타킹, 구두까지 모두 제재를 받아야 했다.
고등학생 지영이가 모르는 남자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도
아버지는 몸가짐 단정히 하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며 오히려 혼이 났다.
그리고 회사 여자화장실 몰카가 밝혀졌을 때도 사진 유포하고 돌려본 남자사원들이 아니라
찍힌 여자 사원들이 오히려 욕먹고, 정신과상담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고, 생활도, 일도, 꿈도, 인생도,
자신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오랜만에 나와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는 것으로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다.
정신과의사인 남편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의사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ADHD인 아이를 위해 결국 일까지 그만두고 초등학생용 수학문제집을 잔뜩 푼다.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밖에 없거든" 이라고 하며.

나도 겪었던 일이라 공감이 가고, 또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나마도 김지영씨는 점잖고 자상한 남자들을 만나서 다행이었지만
(과연 다행이라고 하는게 맞는걸까)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성폭력, 언어폭력 등 수많은 폭력들을 겪는 여성들도 부지기수다.
대체 왜 이 모든 것이 여성들의 잘못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책을 읽으며 마음이 쓰이는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남편보다 훨씬 능력있고, 영어도 잘하고
10년 넘게 무역회사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으로 일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여자가 능력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고,
직급과 연봉 등에 남자와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젠 집과 아이들에게 묶여서 경력단절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 드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지만,
자신이 카페에서 값싼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는 것에 남편에게 미안해하는,
그 또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해서 10분밖에는 짬이 안나는 사람.
하고 싶은 것도 많을텐데 살림하고 아토피인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늘 지친 모습,
그리고 배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니는 나를 부러워했던 모습.

이 모든 장면들이 떠오르며 그제서야 그 분이 이해가 되었다.
조만간 이 책을 선물하며 말하련다. 이젠 외숙모 인생을 살라고.

위에서 썼듯이 나는 사실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성차별, 여성운동, 육아휴직, 경력단절 등은 멀게 느껴졌었고
어떨 때는 '나도 여자이지만 저건 너무 예민한거 아니야?',
'굳이 저렇게까지 하나? 저런다고 달라질까?' 라고
나 또한 가담하여 성차별 발언을 일삼은 적도, 찬물을 끼얹은 적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면의 상황을 모르고 너무나 가볍게, 단면만 보고 말했던
정말 무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나도 더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고, 같이 생각하고, 목소리를 함께 실어주고 싶다.
난 제 3자가 아니니까.
나도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제 2의 김지영들 또한.

인구의 절반인 여성.
그러나 비판적인 생각조차 거세되었던, 목소리를 잃었던 우리 여성들이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묵인되었던 차별과 혐오로부터
이제는 잃어버린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야 할 때다.
세대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루어야한다.

먼저는 여자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적인 교육들부터, 우리의 말부터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무조건 여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여자 잘못이 아니라
모든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자들이 비난받아야 하는게 마땅하고,
여성이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과 인식이 개선되어야하며,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폭력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 경력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평등구조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거창한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적 용어도 좋겠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의미로서의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올 날을 희망하며, 나도 함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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