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말하고, 싸우고, 생각합니다? (일부 펌)

loum(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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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단풍나무, 곤충 공격 받으면 화학물질 보내 이웃에 '위험신호'
야생담배는 화학물질로 'SOS' 노린재 불러 애벌레 잡아먹게 해
파리지옥, 벌레가 닿는 횟수 기억… 그에 따라서 잎 닫고 소화효소 분비

흔히 움직일 수 없거나 제 기능을 못 하는 어떤 상태를 지칭해 '식물'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식물인간은 흔히 쓰이는 용어고 식물국회도 뉴스에서 종종 언급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연구를 하지 않는 과학자를 지칭해 '식물과학자'라는 표현도 쓰였다. 식물학자들의 항의로 정정됐지만 식물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정말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무능(無能)의 존재일까.

우리는 식물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식물의 지능과 커뮤니케이션, 감각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26/2016082601442.html

아래는 예전에 제가 예전에 쓴 글입니다.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

"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가시나무의 가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날따라 가시가 저에게는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가시나무를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의 가시의 역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가시나무의 가시들은 동물들(다람쥐, 새 등)이 가시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마도 가시나무의 잎은 다른 나무의 잎보다 먹기 좋고 맛이 좋다.’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동물들이 가시나무의 잎을 좋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느 날 아주 빨간색의 열매를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빨간색이여서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열매는 왜 이렇게 주위의 배경색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도록 주로 원색이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또 다시 ‘왜 씨의 겉에는 과육이 있지?’라는 다른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열매의 과육과  원색은 모두 더 멀리 씨를 전파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과육은 씨를 운반하는 동물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이고 색깔은 동물들이 더 잘 발견해 달라는 유인 수단인 것입니다.

그 외에 풀의 경우는 꽃을 피웁니다. 

꽃 속에 꿀을 넣어두고 나비, 벌 등이 이 꿀을 먹을 때 꽃가루를 묻혀서 보내 교배를 합니다. 

이와 달리, 풀의 씨는 대부분 원색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풀은 주로 바람 등에 의해서 씨를 퍼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나무 열매의 색깔이 원색이라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나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결론은 나무들은 화학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무의 잎을 벌레가 갉아먹을 때 이 나무 잎에서는 특별한 향기, 즉 화학물질이 발산되는데 이 향기는 잎을 갉아 먹고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천적관계에 있는 새나 벌레들이 좋아하는 향기이라고 합니다. 

이 향기가 나면 이 천적들이 이 나무로 와서 이 벌레들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은 화학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나무의 경우, 그 밑에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풍 때 주로 소나무 밑에서 앉아서 놀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나무나 풀의 잎에는 다른 식물들의 씨가 잘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한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잎들이 떨어져 있으면 다른 식물의 씨들은 잘 발아 및 생장을 방해하며 이를 타감작용(allelopathy)이라고 합니다. 

소나무의 경우, 잎에 타감물질(allelopathic substance)인 타닌(tannin)이 포함되어서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풀에게도 적용되어서, 넓은 평지에서 주로 한 종류의 풀만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것은 다른 식물이 생장하지 못하도록 막는 화학물질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에 도달하자 ‘과연 식물들도 생각을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동물의 경우 순간순간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를 판단하기 위한 특별한 부분에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이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물과 같이 특별한 부분에 머리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식물들 자신이 정확히 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참 신비롭습니다. 

나무들은 어떻게 이 동물들이 색깔을 구별하는지 알았으며 또한 동물들이 어떤 맛의 과육을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알았으며, 

가시나무 잎을 먹으려는 동물들이 싫어하는 그 크기의 가시를 어떻게 계산하여 만들 수 있었으며 

벌과 나비가 어떻게 색깔을 구별하는지 알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참조) 일반적으로 사자, 돼지, 개 등의 동물들은 색맹으로서 인간과 같이 색깔을 구별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새들은 인간보다 더 넓은 범위의 색깔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진화(또는 자연선택)에 의해서 설명될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아는 수준에서 진화라는 것은 유전적인 변이 확률, 즉 확률에 의해서 이런 것들이 가능할 것입니다. 

식물도 진화 즉 자연선택을 통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었겠지만, 오늘은 자연을 시(詩)적으로 보고 싶어서 '식물도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았습니다."

https://hanaloum.blogspot.kr/2013/12/blog-post_37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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