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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05:24
RE: (100%) De Profundis (6)
[104] 훌륭한 친구 한 명--10년간 함께 한--이 얼마 전에 나를 보러 왔다가, 내게 불리한 말을 하나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는 나를 꽤나 결백하게 생각하며, 끔찍한 음모의 희생자로 생각한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에게 확실함 혐의들 중에는 분명 사실이 아닌 것도 있고, 혐오스러운 악의 때문에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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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8 05:14
RE: (100%) De Profundis (6)
[103] 사람들은 내가 저녁을 먹으며 인생의 악한 것들을 맛보며, 그들과 함께 있는데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예술가로서 그러한 관점을 통해 나는 그드에게 유쾌하게 도발적이며 자극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한다. 위험은 흥분되는 일의 절반이다. . . 예술가로서 내 일은 아리엘과 함께 한다. 나는 자신을 캘리벤과 씨름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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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eem
kr
2019-11-17 14:34
RE: (100%) De Profundis (6)
[102] 삶에서 속물주의자들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부, 목자, 시골소년, 소작농과 같이 매력적이며, 예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다. 무겁고, 복잡하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의 힘을 지지하고 유지하는 이들이 속물주의자들이며, 사람이나 운동을 마주할 때 역동적인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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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13:37
RE: (100%) De Profundis (6)
[101] 사람들은 내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어느때보다 더한 개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이 내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덜 세계에게 물어야 한다. 실제로 나의 지나친 개인주의적 삶으로 인해 내가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치스럽고, 용서할 수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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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13:25
RE: (100%) De Profundis (6)
[100] 내가 여기로 이송되는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고자 하는데, 내가 받은 형벌이 고달팠고 절망스럽기 그지 없었으며 그 외에는 좀처럼 다른 것은 없었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했고, 때로는 나도 복종하고 수용하기도 한다. 모든 봄이 하나의 꽃봉오리에 감춰져 있을 수도 있고, 지대가 낮은 종달새의 둥지에는 장밋빛 새벽의 발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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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13:18
RE: (100%) De Profundis (6)
pedestals을 계속 고민했는데 마땅치 않아 '지위'로 의역해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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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13:12
RE: (100%) De Profundis (6)
[99] 글쎄, 나는 나를 위해 웃었던 사람들에 대해 정말이지 더 많은 후회를 느끼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이 날 봤을때는 지위를 누르지 않고 있었고, 칼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상상력이 매우 부족한 기질이며, 자신들의 지위만 신경쓰는 것이다. 지위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 칼이야 말로 대단한 현실이다. 그들은 슬픔을 보다 잘 해석하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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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13:08
RE: (100%) De Profundis (6)
[98]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일년 동안 나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울었다. 당신에게는 이렇다할 비극이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감방에 있는 이들에게 우는 일은 일상의 일부이다. 감방에서 누군가 울지 않는다면 이는 그 날이 행복한 날이 아닌 것이 아니라, 힘든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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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06:45
RE: (100%) De Profundis (6)
[96]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운명이 주어진다. 내 몫은 공공연한 악명과, 긴 투옥, 불행, 파멸과 불명예였였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그럴 자격이 전혀 없다. 진정한 비극이 보라색 천과 고귀한 슬픔의 마스크와 함께 다가 온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거 생각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현대는 비극을 희극화 시킨다는 점에서 끔찍하며, 따라서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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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7 06:42
RE: (100%) De Profundis (6)
[97] 내 비극에 관한 모든 것은 끔찍했고, 사나웠고, 혐오스러웠고, 스타일이 없었다. 우리의 옷이 우리를 기괴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슬픔의 괴짜같다. 우리는 가슴이 찢어진 광대들이다. 우리는 특별히 유머 감각에 호소하도록 만들어졌다. 1985년 11월 13일, 런던에서 나는 여기로 내려왔다. 그날 두 시부터 두시 반까지 나는 죄수복을 입구 수갑을 찬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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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6 12:19
RE: (100%) De Profundis (6)
[95] 마르쉬아스가 '그의 사지를 뜯겼을 때'-- 「그의 몸의 세포」, 단테의 가장 끔찍한 타키투스 구절--그에게는 더는 노래가 없다고 그리스인은 말했다. 아폴로는 승리했다. 리라는 갈대를 짓밟았다. 그러나 아마도 그리스인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현대의 예술에서 마르쉬아스의 울음을 더 많이 듣는다. 이는 보들레르의 씁쓸함이며, 라마르틴의 달콤함과 애처로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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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9:05
RE: (100%) De Profundis (6)
[94] 아마도 내 예술에서는 삶 못지 않게, 여전히 더 깊은 분위기와, 더 크게 통합된 열정, 직접적인 충동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폭이 아닌 깊이가 현대 예술의 진정한 목표다. 우리는 더는 그 형식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내가 나의 고통을 그들이 받아들이는 어떠한 형태로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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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8:59
RE: (100%) De Profundis (6)
[93] 자유로워진 다음 친구 한 명이 내게 잔치를 열고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 있다. 자유, 꽃, 책, 달과 함께라면 누구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잔치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바쳤다. 내 삶의 그런 측면은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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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6 08:49
RE: (100%) De Profundis (6)
[92] 나는 몹시 즐거운 것들이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내 형제 바람과 내 자매 비'라 하는 사랑스러운 것들에서부터 도시의 상점 창문과 일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내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실은, 신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위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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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8:24
RE: (100%) De Profundis (6)
[91] 감옥의 형식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밖으로 나가며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줄 것이다. 나는 노력할 작정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렇게 잘못된 것은 없고, 다만 사랑의 정신인 인류애의 정신이 있을 뿐이며, 교회에 있지 않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옳지 않더라도 이는 지나친 마음의 쓰라림 없이 이를 견딜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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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8:20
RE: (100%) De Profundis (6)
[90] 당신은 내가 노력한 대로 지난 5월에 풀려났으며, 혐오하던 이곳과 내 삶을 해쳤던 관료들을 격렬히 증오하며 떠났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년 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감옥의 우리에게는 인류애가 있었으며, 이제 밖으로 나가며 거의 모든 이들에게 받았던 큰 친절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또한 풀려나는 날에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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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2019-11-16 08:08
RE: (100%) De Profundis (6)
[89] 나는 충분히 오래 살며 그러한 성격의 작품을 만들기를 바라며, 내 날이 끝날 때쯤에는 '그래! 이것이 바로 예술적인 삶이 인간을 이끄는 곳이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우연히 경험했던 가장 완벽한 두 가지 삶은 베를렌과 크로포트킨 귀족의 삶이다. 그들 모두 수년 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한 명은 단테 이후 최초의, 그리스도 시인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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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7:45
RE: (100%) De Profundis (6)
[88] 그러나 삶의 역동적인 힘, 그리고 역동적인 힘이 화신이 되는 이에게는 다르다. 자기 실현의 욕구만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알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 신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아는 것은 필요하다. 이는 지식의 첫 성취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지혜의 궁극적인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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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5:52
RE: (100%) De Profundis (5)
[87] 다른 주제인 예술적 삶의 행위의 관계를 내가 선택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레딩 감옥을 향해 '예술적 삶이 사람을 이끄는 곳'이라 말한다. 글쎄, 더 나쁜 장소로 이끌 수도 있다. 수단과 방법에 대한 치밀한 계살을 바탕으로 인생을 기민하게 추측하며, 언제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가는지 아는 기계적인 사람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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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05:35
RE: (100%) De Profundis (5)
[86] 실로 이는 그리스도의 매력이다. 그가 모든 것을 말할 때, 그는 예술 작품 같다. 그는 실로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지만, 그의 존재 속에 들어옴으로써 누군가는 특별해진다. 모두는 그의 존재로 향해 갈 운명이다. 모두는 적어도 한 번은 생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우스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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